♡♡/다시 꺼내보는 나의 시 23

그 아침의 비밀

그 아침의 비밀 김영주 잠이 덜 깬 새벽녘 유리컵을 닦다가 살과 살이 부딪치며 비명을 내지른다 순간을 놓아버린 손 바르르 떨고 있다 날 선 살점들이 가슴에 와 박힌다 함께 한 시간들이 거품처럼 사라진다 환상을 담았던 것들 꿈이었던 것들이 잃어버린 아픔은 그러모은 시간이다 시간 속에 붙들어 둔 은밀한 욕망이다 물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이 아침 버리고 못버리는 미련조차 짐이다 가벼운 아주 가벼운 비밀하나 가져갈 뿐 살면서 손바닥 위에 건져 놓은 손금 하나 2009년 10월 장원작

궁평리에서 / 김영주 (제2회 이달의 낭송하기 좋은 시 - 한국시낭송협회 낭송시 수상)

tv.kakao.com/embed/player/cliplink/25542549@my?service=flash&alert=true' 궁평리에서 김영주 우리는 천천히 방파제를 걸었다 사랑을 몰랐던 바다를 몰랐던 그 때 그 어린 시절 가질 줄 몰랐던 나이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약속 그러나 오래된 약속을 지키듯 그렇게 천천히 노을을 향해 걸어갔다 격조한 세월 앞에 이야기는 툭툭 끊겨 나는 이따금 부풀린 몸짓으로 나를 들켰지만 너는 아버지처럼 너털웃음을 웃었고 나는 아직도 열여섯 계집애처럼 두근거렸다 오늘 하루도 리허설이라고, 너는 삶에 무슨 리허설이 있느냐고, 나는 어제는 오늘을 위한 오늘은 내일을 위한 연습이었노라고 넌 말했다 어디쯤 가고 있었을까 한번도 연습을 모르고 살아온 나와 날마다 연습처럼 살아온 너와..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 김영주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김영주 자동차 백미러에 거미 같이 매달린 글씨 눈여겨 들여다본 적 한번쯤은 있지요 사물이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에 있다구요 하늘 아래 못 믿을 게 '나'였다는 말이지요 내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본다고 다 보이는 게 아니었단 말이지요 셈 따라 머리 따라 들이대는 잣대로는 어이없이 멀 수도 턱없이 가까울 수도 섣불리 길다짧다를 삼가라는 말이지요 2016 봄호

<국민의 사전적 의미>, <표>, <국가에 대한 사유> / 김영주

국가에 대한 사유 김영주 하나밖에 가진 게 없는 아흔아홉 도구들이 아흔아홉을 거머쥔 일 프로의 사용자를 받들고 먹여 살리는 불가사의한 조직체 김영주, &lt;국가에 대한 사유&gt; 전문 『오리야 날아라』2015 - 현대시학 '국민'의 사전적 의미 김영주 오로지 '의무'를 위해 길들여진 생명..

편도(片道) / 김영주

편도(片道) 김 영 주 고등동집 앞마당 수수꽃다리 그늘 아래 비바람에 삭아져 다리 저는 평상에 앉아 누구를 기다리실까 먼 산 보시는 어머니 뜰을 지나 담장 너머 그 너머 또 그 어디쯤 적적히 걸어가실 뒷모습을 보시는지 갈길이 믿기지 않아 아무래도 믿기지 않아 청마루에 엎디어 걸레질하던 나는 어머니 뒷모습만 숨죽여 훔쳐보다 눈물로 흥건해지는 바닥만 자꾸 문지르다 모시고 가지도 못할 아득히 먼 여행길 편도 차표 한 장 어머니께 끊어드리고 어머니 앉아가신 자리에 어머니처럼 앉아 있다 라일락 꽃봉오리가 맺히기 시작했다. 해마다 봄은 꼭 오지않을 것처럼 오는데 내 봄은 개나리도 벚꽃도 아닌, 라일락으로 부터 오는 것 같다. 비바람에 삭아져 다리저는 평상은 어머니를 앞서 간 아들이 심어놓은 라일락 나무 아래 앉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