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시

등잔 / 신달자

꿍이와 엄지검지 2009. 12. 20. 08:57

인사동 상가에서 싼값에 들였던
백자 등잔 하나
근 십년 넘게 내 집 귀퉁이에
허옇게 잊혀져 있었다
어느 날 눈 마주쳐 고요히 들여다 보니
아직은 살이 뽀얗고 도톰한 몸이
꺼멓게 죽은 심지를 물고 있는 것이
왠지 미안하고 안쓰러워
다시 보고 다시 보다가
기름 한 줄 흘리고 불을 켜 보니
처음엔 당혹한 듯 눈을 가리다가
이내
발끝까지 저린 황홀한 불빛

이 불을 당기면
불이 켜지는
아직은 여자인 그 몸.

 

                 - 신달자, <등잔>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