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시

버섯장국 / 서정택

꿍이와 엄지검지 2011. 10. 10. 10:12

 

<특집> 배우식 시인의 시조평론

 

시조는 함축적 언어의 탄환이다

 

  시인은 어둠속에서 빛의 세계를 찾아내는 사람이다. 어둠속에서 어둠의 살을 보지 않고 어둠의 살을 낱낱이 해체하여 그 속에 감추어진 빛의 뼈를 찾아내는 사람이 시인이다. 어둠의 살이 아닌 빛의 뼈를 원료로 하여 언어의 탄환을 만드는 사람이 시인이다. 언어의 탄환은 밀도가 조밀할수록 폭발력은 더욱 커진다. 시인은 오직 혼자서의 힘으로 이 탄환을 함축적 언어로 만들어 사람들의 가슴을 향하여 쏘아 올리는 것이다.

 

 

쑥잎 쑥덕공론을 한 푼도 셈하지 않고

 

쑥부쟁이, 쑥 비탈을 쑥물인양 들이켠다

 

나는 예, 앉아 있건만 버섯 따는 저 손 누구냐

 

감자바위 잔솔나무 솔버섯 나던 자리

 

                       대신한 아파트를 하모니카 부는 바람

 

                       아무리 흐느낀다 해도 버섯 끓는 장국만 할까

 

                      할머니 양은솥에선 솔새 우짖었는데

 

                      양념 변변찮아도 솔밭 우거졌는데

 

                      쑥, 뽑힌 아파트에는 쫑긋 솟는 노래가 없다

 

― 서정택, 「버섯장국」 전문

 

 

  현대시조는 노래방식에서 읽기 텍스트로 진화 발전해나가고 있다. 따라서 시조의 언어는 사전적 의미의 객관적 언어를 시인의 문법 속에서 주관적으로 재구성하여 의미를 확장시켜 새로운 시적 언어로 창조하여야 한다. 이런 면에서 서정택 시인의 시조 「버섯장국」의 언어는 새로운 인식과 의미로 새로운 시적 언어를 창조해낸 개성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시조 작품의 수준을 평가하는데 강조되곤 하는 독자성과 창의성은 다름 아닌 개성을 뜻한다. 그러므로 개성이 넘치는 「버섯장국」은 상당히 수준 높은 작품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생각의 진정성과 상상의 깊이가 또한 그 수준을 말해준다.

 

  세 수로 구성되어 있는 「버섯장국」은 각 장과 장 사이를 벌려놓아 형식적인 여백미는 물론 의미에 있어서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시조에 있어서의 여백이란 침묵을 뜻하는데, 장과 장 사이에서 말하지 않음으로 더 많은 말의 의미를 담는 것이 여백이다. 시인은 여백을 의도적 시적장치로 도입하여 많은 울림을 주고자 한다.

 

  첫째 수에서의 ‘쑥잎’은 아파트가 들어서는 지역에 사는 민초들의 은유이며, ‘쑥덕공론’은 그들의 생각과 여론을 말하는 것이다. 난폭한 개발현장에는 항상 힘없는 쑥잎 사람들의 의견과 사정이 무시되는 것이 현실이다. ‘쑥 비탈’을 쑥물을 들이켜듯 쉽게 파괴하는 것을 보고 화자는 자신의 내부에서 들끓는 슬픔 혹은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화자는 감정을 억누른 채 언어를 감추고 그 뜻을 숨김으로써 긴장감을 극대화하여 결국 시의 미학을 성취한다. 아무나 할 수 없는 고도의 시적 전략이 행간에 스며있다. 화자는 ‘나는 예’ 앉아 있건만 ‘버섯 따는 저 손 누구냐?’하고 폭력적 개발을 일갈한다. 감정을 쏟아내며 소리 지르는 언어보다 훨씬 무겁고 울림이 크다. 절제미가 돋보이는 첫째 수의 종장이다.

 

  둘째 수의 초장은 감자바위 잔솔나무 솔버섯 나던 자리, 인공이 가미되지 않은 그야말로 천연의 자리이다. 자연을 밀어내고 인공의 자리에 들어선 네모난 구멍의 하모니카 같은 아파트를 그때 그 바람이 돌아와 불고 흐느껴도 ‘버섯 끓는 장국만 할까?’하고 화자는 신음하듯 언어를 토해낸다.

 

  셋째 수에서는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을 상상하며 ‘우짖었는데’와 ‘우거졌는데’의 반복적 문장으로 아쉬운 마음을 강도 높게 표현한다. 다 헤아릴 수 없는 환경파괴를 질타하는 화자의 시적 언어가 공감으로 전해온다. ‘쑥’이 뽑힌 아파트에는 ‘쫑긋 솟는 노래가 없다’라는 종장은 매우 다의적이다.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언어들을 아우르고자할 때 애매성은 탄생한다. 현대 생활은 복잡하고 애매하기 때문에 시인은 애매성을 추구한다. 이 애매성은 의미가 불분명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애매성이 클수록 시적인 미감은 더욱 증가한다. 영미의 신비평가인 웰리엄 엠프슨은 이 ‘애매성’을 ‘다의성’의 의미로 사용한다. ‘의미의 겹침’과도 일맥상통한다. 「버섯장국」에서 가장 돋보이는 시어는 단연 ‘쑥’이다. 시조 창작에서 경계해야 할 것 중의 하나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같은 말의 반복을 배제한다. 그러나 서정택 시인은 의도적으로 ‘쑥’이라는 시어를 여섯 번이나 사용해도 아무런 거부감이 없다. 오히려 ‘쑥’이 주는 리듬감으로 이상하고도 묘한 매력을 주는 것은 물론 시조 전체에 역동성을 부여한다. 서정택 시인만이 할 수 있는 시적 언어의 운용이다.

 

  현대시조의 앞장에서 현대시조를 현대시조답게 창조해나가는 서정택 시인은 다의적 시조미학을 실현하며 시조가 나아갈 방향성을 끊임없이 제시한다. 또한 시인은 일상적 어법을 비틀어서 진실에 닿으려는 창작방법으로 실험적 시조 쓰기에도 열성을 갖고 있다. 이런 시조는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고 사로잡는다. 시인의 시조는 작품마다 맛있는 시적미감을 갖고 있으며 또한 시적 언어를 다루는 솜씨가 시인들 중에 두드러진다. 우리가 서정택 시인을 주목해야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배우식/약력

 

 

  충남 천안에서 출생하였다.  2003년 ?시문학?에서 시로, 2009년 《조선일보》에서 시조로 등단했다. 

2004년 문예진흥기금 지원대상자로 선정되었으며, 2005년 시집 『그의 몸에 환하게 불을 켜고 싶다』를 출간했다.

또한 2011년에는 시 「북어」가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수록되었다. 현재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에 있다.

 

 

 - <<나래시조>> 2011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