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의 율격에 대하여
시조의 율격에 대하여
현대시조에 있어서 시조의 음보는 잣수의 개념보다
한 mora(시간적 길이를 지닌 음의 분절 단위)로 정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음표로 따지면 한 박자가 되겠지요.
거슬러 가면 현대시조 뿐 아니라 고시조에서도
종장의 과음보는 다섯 자에서 아홉 자까지도 허용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1)
가마귀 / 검다하고 / 백로야 / 웃지마라(3.4.3.4.)
겉이 / 검은 들 / 속조차 / 검을소냐(2.3.3.4.)
아마도 / 겉 희고 속 검은 이는(3.8)
너뿐인가 / 하노라
- 이직
2)
인생이 / 둘가 셋가 / 이 몸이 / 네 다섯가
빌어온 / 인생이 / 꿈의 몸 / 가지고서
평생에 / 싸울 일만 하고 (3.6)
언제 놀려 / 하나니
- 미상
3)
청초 / 우거진 골에 / 자난다 / 누웠난다
홍안을 / 어듸 두고 / 백골만 / 묻혔난다
잔 잡고 / 권할 이 없으니(3.6)
그를 / 슬허하노라(2. 5)
- 임제(1549~1587)
구(句)안의 음량을 음보로 정한 것을 알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안고 있는 예를 더 들어보겠습니다.
어져 / 내일이야 / 그릴 줄을 / 모르더냐(2.4.4.4.)
이시랴 / 하더면 / 가랴마는 / 제 구태여(3.3.4.4.)
보내고 / 그리는 정은 / 나도 몰라 / 하노라
- 황진이
천부지재하니 / 만물의 / 부모로다 (6.3.4) 이나 (2.4.3.4.)로 이해하지요
부생모육하니 / 이 내의 / 천지로다(6.3.4) 이나 이것도 (2.4.3.4)로 이해하지요
이 천지 / 저 천지 즈음에 (3.6)
늙을 뉘를 / 모로리라(4.4)
- 이정환(1613~1673)
또, 종장의 과음보에 대한 예로는
동짓달 / 기나긴 밤을 / 한허리를 / 둘려 내여 (3.5.4.4)
춘풍 / 이불 아래 / 서리서리 / 넣었다가(2.4.4.4)
어룬님 / 오신 날 밤이여드란 (3.8)
구뷔구뷔 / 펴리라
- 황진이
하물며 / 어약연비 운영천광이야 (3.10자입니다)
어늬 그지 있으랴
- 이황, 춘풍에 화만산 하고
아희야 / 박주산채일망정 (3.7)
없다 말고 / 내어라
- 한호, 짚 방석 내지마라
저 물이 / 거스리 흐르과저 (3.7)
나두 울어 / 보내리라 (4.4)
- 원호, 간밤에 우던 여흘
평생에 / 악된 일 아니하면(3.7)
자연 위선 하리라
- 작자미상, 선으로 패한 일 보며
이렇듯 시조의 정형율은
3.4.3.4./ 3.4.3.4./ 3.5.4.3 이 기본이겠으나
고시조를 분석해 본 결과 이러한
기본 정형율을 정확하게 지킨 것은 학자들에 의해
4%에 불과하다는 통계를 보았습니다.
한 자가 더 하거나 빠져도 시조의 정형율로 문제 삼지 않는 것으로 압니다.
시조는 정형시이므로 잣수를 충실히 지켜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너무 얽매여서 읽는데 부자연스럽거나
작자가 의도한 내용대로 전달이 되지 않는다면
약간의 여유를 주는 것이
독자에게는 시조에 대한 거부감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잣수에 치중하다 넣지 않아도 좋을 조사를 넣거나
꼭 필요한 조사를 억지로 빼거나단어를 줄여서 그 의미가 달라진다면 작자로서는 손해이겠지요.
시조를 짓기 어렵다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 까닭이 글자수 맞추기가 어려워서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시조를 널리 보급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오히려 그 정확한 규격이 오히려 족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시조를 지켜야하는 사람들입니다.
당연히 시조의 틀을 깨서는 안됩니다.
너무 멋을 부려 파격을 보이는 시조도 좋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자로 잰듯한 정확한 율격으로
시조에 대한 편견을 독자에게 심어주어
읽혀보지도 못한 채 외면당한다면
글을 쓰는 의미가 없겠지요.
같은 상품이라도 포장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소비자의 구매의욕을 끌어 당길 수 있습니다.
그것을 시조에 있어서는 행갈이의 묘미에 비유할 수 있겠습니다.
행을 가른다고 해서 시조의 정형이 흐트러지면 안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