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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읽기 4 - 독서를 관리하는 시스템?

꿍이와 엄지검지 2012. 11. 29.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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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의 도서관 읽기 4] 
ⓒ 오산시민신문
김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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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시민신문 2012.  12.  5

 

독서는 보험에 비유할 수 있겠다.  그것도 아주 긴 장장기 보험.  읽는 대로 바로 배설이 되어 나오는 음식물과는 다르니까. 그런데 책을 읽고, 읽은 책의 소화가 잘 되었는가 아닌가를 그 자리에서 배설시켜 내용물을 펼치고 헤집어 파악하려 하고 있다.  급하면 배설물을 빨리 내놓으라고 배라도 가를 기세다.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따르게 마련이나 공급에 의해 수요가 발생하는 묘한 구조가 형성된다. 먹은 음식물을 파헤치려니 파헤쳐진 내용물을 보기 좋게 하려고 식단을 컬러풀하게 디자인해주기도 하고 대신 먹어주기도 하는 신종 직업이 생겨난다.  
먹을 것의 순서와, 먹을 것의 부분, 색깔 등을 골라주면 고객은 골라준 음식에 혀만 대보고 디자이너가 대신 먹어 소화시킨 것을 정리해서 내보내주는, 즉 배설물을 관리해주고 고액의 관리비를 받는 직업이다. 
 
먹은 것이 몸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 몸에 흡수 되어 피부에 윤기가 도는지 머릿결이 좋아지는지, 팔다리가 튼튼해지는지는 시간이 지나 흡수한 영양가 덕분에 일어나는 결과인데 그런 것에는 가치를 두지 않고 다만, 오직! 보기 좋은 배설물을 뽑기 위해 배설물을 디자인한다.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다.  이 시스템은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 인해 아이들이 책을 멀리하게 되는 것을 우려하자 도입된 시스템이다. 독서의 여부를 확인하여 기록하게 하는 방법으로  내용과 이해도 확인을 위해 문제를 제시해 풀게 하고, 다양한 방법의 독후활동지를 첨부하게 하고 있다. 이로 인해 수험준비에 바쁜 아이들을 대신해 독서를 해주고 <독서교육종합시스템>에 그 내용을 올려주고 고액의 관리비를 지불하는 신종직업이 생겨났다.  

독서는 시험이 아니다.  그런데도 시스템의 기록을 위해서 책을 읽어야 하는 시간에 문제 풀이로 시간을 보낸다. 남보다 더 잘 써서 눈에 띄게 하려니 학원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더 나아가 학생 대신 기록을 전담해주는 등, 기록을 잘 남기기 위해 부모나 교사가 편법을 쓰는 것을 용인하는 일이 발생한다. 책을 읽은 아이의 감동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록을 잘 하기 위한 방법을 배우는 일에 치중하게 되므로 아이들은 사교육에 의존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생기게 된 것이다.  
 
이러다가 아이들도, '대입에 필요한 것으로, 하기 싫어 억지로 해야 하는 수업이나 형식적 절차'로 독서가 인식되어 그나마의 독서욕구마저 상실하게 될까 걱정이다.

김영주/(1959~ )
시인.
학교도서관 사서.
시조집『미안하다, 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