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구체 속에 빛나는 연민과 사랑의 마음
삶의 구체 속에 빛나는 연민과 사랑의 마음
김영주의 정형 미학
유성호(문학평론가, 한양대 교수)
1. 대상을 향한 가없는 연민의 마음
김영주 시인의 첫 시집 ?미안하다, 달?(이미지북, 2012)은, 완미하고도 심미적인 정형 양식 안에서 다양하고 깊이 있는 상상력을 보여주는 뚜렷한 성취로 다가온다. 시인은 자신의 삶에 가장 소중하게 각인된 여러 인상적인 장면들을 통해 대상을 향한 가없는 연민과 사랑의 마음을 노래하고, 나아가 깊은 깨달음의 이법(理法)을 선연하게 형상화한다. 이러한 연민과 사랑과 깨달음의 일련 과정을 통해 우리는 그녀의 상상력에 깃들인 따스함과 깊음과 오램의 미학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연민과 사랑의 마음이 추상적 전언(傳言)에 실려 오는 것이 아니라, 삶의 구체에 담겨 전해져오는 드문 풍경을 바라보게 된다. 대상을 향한 가없는 연민의 마음이 단아하게 담겨 있는 다음 시편을 한번 읽어보도록 하자.
저녁도 한참 지난 공원 앞 포장마차
종이할머니 유모차 끌고 ‘국물 좀 주우’ 하신다
주인은 두꺼운 손으로 별떡 달떡 담아준다
허기 면한 주름진 손 괴춤을 더듬는다
“어머니, 아까 주셨어요”
파만 송송 써는 남자
폐지 위 빈 상자 속으로
별빛 내려
앉는 밤
― 「별이 빛나는 밤에」 전문
공원 앞 포장마차에서 펼쳐진 풍경 하나가 아스라하게 인화되어 있다. 폐지를 주워 유모차에 담고 걸어가던 할머니와 포장마차 주인인 한 사내가 주고받는 대화가 시편의 줄기를 이룬다. 두꺼운 손으로 허기를 면할 먹을 것을 담아 주는 주인과 괴춤을 더듬으며 값을 치르려는 할머니 사이에 오가는 단순하기 그지없는 대화가 마치 ‘별이 빛나는 밤’처럼 아름답게 번져간다. 이 시편은 ‘허기’를 둘러싼 구체적 장면을 통해 ‘주름진 손’과 ‘폐지 위 빈 상자’로 상징되는 가난의 풍경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 허기와 가난 위로 떠오르는 ‘별’이라는 심미적 표상을 통해 치유와 위안의 마음을 아름답게 펼쳐낸다. 그래서 우리는 김영주 시편들을 통해 한편에서는 “두려운 건 삶이란 걸”(「치매병동에서」) 승인하게 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삶이란 서로 위로하고 연민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는”(「자비송 ― 결혼 이야기」) 과정임을 알아가게 된다. 따스하고 애잔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이삼 일 밭을 비웠더니 상추잎이 반쪽이다
달팽이 내 밭에서 제 집인 양 뒹굴고 있다
손등을 쥐어뜯긴 듯 구멍 난 잎이 쓰리다
놈과 싸우려고 고랑에 약을 놓다
아니지, 너 사는 땅에 내가 밭을 들인 거지
네 터전 함부로 일군 내 잘못이 더 큰 거지
하마터면 내 허물을 너에게 씌울 뻔했다
너 조금 미안한 맘
나 좀 더 미안한 맘
절반씩
나눠먹어도
절반은 남는 농사지
― 「화해」 전문
이번에는 달팽이와 시인 사이에 무언의 대화가 펼쳐진다. 며칠 비운 상추밭에 가보니 달팽이들이 상추잎에 붙어 있고 잎들은 반쪽이 되었거나 구멍이 나 있다. 제 집인 양 뒹굴고 있는 달팽이들을 향해 시인은 약을 놓을까 하다가 문득 “아니지, 너 사는 땅에 내가 밭을 들인 거지” 하는 깨달음에 도달한다. 돌려 생각해보면 달팽이의 터전을 함부로 일군 자신의 잘못이 더 큰 게 아닌가 하는 자각이 밀려온 것이다. 이는 타자를 삶의 안쪽으로 깊이 수용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허물을 발견해가는 성찰의 품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렇게 “조금 미안한 맘”과 “좀 더 미안한 맘”이 절반씩 나누어질 때 찾아오는 화해의 마음을 시인은 “절반은 남는 농사”라고 명명하고 있다. 이러한 화해의 마음은 다른 시편들에서 늙은 말이나 어미 소, 유기견 등에 관한 짙은 연민으로 변형된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명퇴자나 극빈자 같은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애틋한 마음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모두 김영주 시인의 “둥글게 내주는 몸”(「물의 화엄」)을 보여주는 구체적 실례들일 것이다.
이번 시집에는 “새끼 가진 어미만이 젖을 낼 수 있다는 걸”(「젖」) 알아가는 모성의 감각으로부터 “한 줌 빛 들지 않는 그림자도 숨진 방/강남 땅 한 복판에 표류하는/외딴/섬”(「쪽방촌 ― 도시경쟁력 12위, 서울」) 사람들의 구체적 삶에 대한 사회적 성찰까지 놀라운 편폭의 연민과 사랑이 담겨 있다. 한결같이 김영주 시인의 밝은 눈과 따스한 마음 그리고 만만찮은 깊이의 사회적 상상력을 보여주는 장면들일 것이다. 그때 그녀 시편들은 “소리 없어 더 눈부신/상처 어르는 저 손의 말”(「수화手花」)이 되어 우리에게로 밀려온다.
2. 자연 사물에서 발견하는 인생론적 비의(秘義)
시의 궁극적 기능은 새로운 깨달음과 감각의 갱신을 통해 삶의 의미와 본질을 재발견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특별히 그동안 공들여 축적해왔던 평화나 자유 같은 커다란 가치들이 폭력적으로 폐기되고 그 빈자리를 온통 자본의 효율성이 메워버린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시가 가지는 이러한 대안적 가치를 소중하게 신뢰하게 된다. 김영주 시인 역시 자연 사물을 통하여 깊은 인생론적 비의(秘義)를 발견하는 일련의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시의 궁극적 가치가 삶의 의미와 본질을 새롭게 재발견하는 데 있음을 증명한다. 그 품이 꽤 넓고 깊다. 이번 시집의 표제 시편을 한번 읽어보자.
누가 또
달, 너만큼
천의 얼굴
가졌으리
네 둥근 품안에 든 무량한 이야기들
하나
둘
꺼내다보니
그 비밀이
적지 않다
― 「미안하다, 달」 전문
시인은 천의 얼굴을 가진 ‘달’에서 비밀스런 무량한 이야기를 상상하고 있다. 결국 ‘달’의 둥근 품안에 들어 있는 이야기들을 꺼내 풀어놓은 것이 그녀 시편인 셈인데, 그 비밀이 적지 않게 우리들 삶을 향해 하나둘씩 번져온다. 이렇게 시인은 자연 사물 안에서 “저마다/그릴 수 없는 소리로/경을 읽고 있는”(「백담사 가는 길」) 비밀스런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런데 시인은 그러한 마음을 ‘미안하다’고 적고 있다. 천의 얼굴을 지운 채 둥근 품으로 웃고 있는 만월(滿月)에게서 하나둘씩 이야기를 꺼내 비밀을 드러낸 것이 그 미안함의 근인(根因)일 것이다. ‘달’은 무량한 이야기를 품고서 자신의 모습을 차츰 바꾸어가고, 그를 따라 시인도 “너만큼/천의 얼굴”을 가진 비밀스러움으로 시를 쓴다. “마리아나/관음 같은”(「따뜻한 흔적」) ‘달’을 통해 비밀스런 이야기를 풀어놓은 김영주 시편들이 시집 곳곳에 느런히 펼쳐져간다.
기러기 더디 오네
하늘 점점 더 깊은데
ㅛ ㅠ ㅛ
ㅠ ㅠ
ㅠ ㅠ
ㅠ ㅠ
ㅠ ㅠ
ㅛ ㅠ ㅛ
산굽이
물굽이길을
돌아
돌아
오시는지
― 「가을」 전문
이 시편은 가을 하늘 풍경을 재미난 영상으로 표현하고 있다. ‘기러기’가 나는 모습을 ‘ㅛ/ㅠ’ 두 모음을 통해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여기서 ‘ㅛ/ㅠ’가 펄럭이는 듯한 형상은 그 자체로 기러기가 떼를 지어 날아오는 모습이기도 하지만, 기러기의 울음소리를 음차한 상징적 모음 배치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더디게 날아오는 기러기는 “산굽이/물굽이길을/돌아/돌아” 오면서 깊어가는 가을을 아름답게 완성한다. 마치 ‘달’이 적지 않은 비밀을 풀어놓듯이, “한 번도 내 것인 적 없었던/놓을 수도 없던 바람”(「방패연」)처럼 기러기 떼의 모습과 울음소리는 가을이라는 신비로운 시간을 하늘에 가득 풀어놓는다. 결국 이 시편은 일종의 형태시적 속성을 흥미롭게 구현하면서 오랜 기다림의 순간을 형상화하는 시인의 감각을 아름답게 보여준 사례이다.
우리는 시인과 대상 간의 조화로움보다는 그 사이의 균열을 표현하는 것이 더욱 대우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 내면과 대상이 서로 유비적으로 화응하는 것보다는, 내면과 대상 사이에 종종 파열음이 빈번하게 목격되는 것도 이러한 시대적 성격을 반영하는 것일 터이다. 하지만 모든 시가 다 파열음을 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 일상화된 균열과 파열 양상 속에서도 어떤 순간에 드러나는 사물의 ‘충만한 현재형’을 포착하고 표현하는 것이 시의 으뜸 되는 기능임을 증언하는 사례도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김영주 시편들은 그러한 양도하기 어려운 본래적인 시적 기능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순간에 드러나는 사물의 충만한 현재형을 통해 가장 근원적인 인생론적 성찰의 마디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마디와 마디 사이 비움을 채우고 산다
텅 빈 가슴에도 뜨거운 피는 돌아
나무는 비워도 채워도 마디마디 아프다
땅 속 깊은 곳에서 나무의 어린 뿌리는
견뎌낼 만큼의 마디부터 만들었다
살아 갈 제 삶의 무게를 알기라도 한다는 듯
소리 없이 우는 법을 나무는 알지만
속없이 사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어서
제 키를 마디 없이는 버틸 수가 없었단다
죽기 위해 단 한 번 나무는 꽃을 피운다
맺을 거 더러 맺고
비울 거 다 비웠다며
뼈아픈 고통을 안고
마디가 큰다
― 「마디가 큰다」 전문
시인은 ‘대나무’의 생태와 성장 과정을 통해 삶의 근원적 의미를 배워간다. 제 몸의 마디 사이에 있는 ‘비움’을 채우면서 살아가는 ‘나무’는, 비울수록 채워진다는 역리(逆理)를 사유하는 시인의 분신으로 거듭난다. 하지만 텅 빈 가슴에도 피가 뜨겁듯이 “나무의 어린 뿌리”는 마디가 자꾸 아프다. 그래서 삶의 무게를 견뎌낼 만큼의 마디를 땅 속 깊은 곳에서 만들어 낸다. 제 키를 마디 없이 버틸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무’는 고통을 안은 채 자신의 ‘마디’를 키워감으로써 그리고 소리 없이 우는 법을 배움으로써 자신의 삶을 지키고 완성해간다. 이렇게 죽기 위해 단 한 번 꽃을 피우는 ‘나무’를 통해 시인은 뼈아픈 고통을 안고 커가는 인생의 마디를 깊이 사유한다. 여기서 나무의 ‘마디’는 인생의 ‘마디’를 고스란히 은유하면서, 시인이 채워가려는 인생론적 성찰의 의미를 유기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성찰의 안목은 “발걸음 느리게 놓으니”(「만행」) 비로소 보이게 되는 삶의 위의(威儀) 속에서 “더디게 물꼬를 트며 홀로 걷는 먼먼 길”(「멀지만 가고 있다」)을 발견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이 모든 것이 자연 사물에서 발견하는 그녀만의 인생론적 비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 기억과 사랑의 시학
이번 시집의 애잔한 풍경 가운데 하나는 시인의 기억 속에 깃들인 가족이 등장하는 장면이다. 가족 혹은 가족의 삶이란 우리 모두에게 가장 깊은 기억의 뿌리이자 자신이 살아온 시간을 거슬러오를 수 있는 일차적 실재일 것이다. 이때 시간을 거슬러오르는 기억이란, 과거를 향하는 복고적 행위가 아니라, 지나온 시간을 원초적 경험 형식으로 탈환하면서 그것을 현재와 연루시키는 적극적 행위이다. 김영주 시인은 이러한 기억을 통해 자신의 존재론적 기원을 상상하고 있다. 이제 그 기억의 내질(內質)로 들어가보자.
텃밭 배춧잎에 당글당글 진초록똥
애벌레 앉은 잎을 조심스레 따내린다
밭에 온 손님이라고
많이 자시고
가라고
― 「어머니의 농사법」 전문
여기서 어머니의 ‘농사법’은 그 자체로 어머니의 인생론이기도 하다. 이 아름다운 단수를 보니 앞에서 본 「화해」라는 시편에서의 “절반은 남는 농사”법은 김영주 시인이 어머니께로부터 정성스럽게 배운 결과로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아닌 게 아니라 어머니는 텃밭 배춧잎에 당글당글 진초록똥으로 앉은 애벌레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시려고 조심스레 잎을 따 내리시면서 그네들을 “밭에 온 손님”으로 대우하신다. 마지막에 “많이 자시고/가라고” 하시는 말씀은, 마치 품 넓은 주인이 손을 대하듯 혹은 어머니가 자식을 대하듯 하는 마음을 은유한다. 그 어머니를 ‘사진’을 매개로 하여 기억하는 다음 시편도 눈물을 글썽이게 한다.
서랍에 누워 계신 어머니를 꺼내 봐요
할머니 고우시네요, 사진사가 그랬다죠
울 엄마 기분 좋았겠네
말없이 웃으셨죠
돋보기 코에 얹고 돌아앉은 얇은 등
사진 속 당신 얼굴 보고 또 쓰다듬고
다 늙어 곱기는 뭐가…
혼잣말을 하셨죠
사진관 가시면서 무슨 생각 하셨을까
깨질 듯 부신 하늘 코끝 찡 하셨을까
젖은 듯 웃는 얼굴이
흔들리네요 자꾸만
나도 곧 어머니처럼 카메라 앞에 앉겠지요
할머니 고우시네요, 젊은 사진사 농을 하구요
두고 갈 사진이에요
아마 나도 그러겠지요
― 「사진관 가는 길」 전문
이 시편은 ‘사진(寫眞)’이라는 방법론적 은유를 통해 대상에 대한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대상을 온전히 기억하고 표현하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시인은 근원적 기억을 향한 끝없는 회귀 과정을 통해 자신의 기원에 가 닿으려 한다. 이제 사진으로 남아 서랍에 누워 계신 어머니는 사진사가 그랬다는 “할머니 고우시네요”라는 말의 환청으로 남아계시다. 어머니는 말없이 웃으시던 “사진 속 당신 얼굴”을 보고 또 쓰다듬고 하시다가 그 ‘고움’을 남긴 채 사진 속으로 인화되신 것이다. 그러니 사진관 가는 길은 결국 흐르는 시간을 한순간 잡아두면서 동시에 코끝이 찡하도록 얼굴이 젖어드는 길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게 흔들리며 걷는 사진관 가는 길을 시인도 언젠가 걸을 것이다. 그때 젊은 사진사가 건네게 될 “할머니 고우시네요” 하는 농(弄)은 한 세대를 격(隔)하여 전해져올 아름다운 잔상(殘像)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렇게 김영주 시인은 “어머니 가시던 해는 하루가 십 년이더니//어머니께 가는 날이 십 년 더 가까워지니//지나간 십 년 세월이 엊그제만 같네요”(「염념念念」)라는 기억을 통해, 그리고 “날실 따로/씨실 따로/남인 듯/한 붙이를//옛이야기 풀어내듯/새 이야기 지어내듯//어머니 손끝에 벙글던/그 겨울의/꽃망울”(「벙어리장갑」)에 대한 기억을 통해, 자신의 가파르고도 소중한 기원을 상상하고 표현한다. 그리고 그러한 애틋한 기억의 연장선상에 아름다운 사랑의 시학을 펼쳐놓는다.
네 만약 얼어붙은 내 명치끝을 뜯어내고
꺼질 듯한 불씨 하나 떨어뜨리고 간다면
그 불씨 소스라치며
나 사랑에
눈뜬다면
내 속에 불 지핀 죄 결단코 묻지 않겠네
아낌없이 태우겠네
나 죽어 다시 산다면
진실로
뜨거웠노라고
너와 함께
단 한 번
― 「폭죽」 전문
시인은 ‘폭죽(爆竹)’이라는 상징을 통해 사랑의 열도(熱度)를 표현한다. 얼어붙은 명치끝을 뜯어내고 그 안에 꺼질 듯한 불씨 하나 떨어뜨리고 간 ‘너’를 통해 사랑에 눈뜬다. 그렇게 사랑에 빠진 순간, 불씨는 소스라치며 시인의 마음 속에서 불로 지펴져간다. 그렇게 불을 지핀 죄가 바로 ‘사랑’이고, 죄를 묻지 않으면서 아낌없이 ‘사랑’을 태우는 마음이야말로 시인이 꿈꾸는 가장 뜨거운 한 번의 순간일 것이다. 그 순간의 힘으로 사랑하는 모습이 바로 ‘폭죽’이라는 은유를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우리가 잘 알듯이, ‘사랑’이란 대상을 향한 호감이나 열정을 넘어 대상을 향한 헌신의 마음을 내포한다. 그래서 시인은 가없는 그리움을 표현할 때도, 인생에서 부재하는 어떤 궁극적인 존재를 열망하고 그에 헌신하는 마음을 보여준다. 그럼으로써 우리 삶의 가장 깊은 근원을 지향하는 자신의 시세계를 보여준 것이다. 그렇게 김영주 시인은 “홀로 먼발치서 서성이다 돌아섰을/그대 내 아픈 사랑”(「책 읽어주는 남자 ― 이런 사랑도 있었느니」)을 노래하기도 하고, 자신의 ‘시(詩)’는 “내 모든 것의 경이로운/바로 그 첫!//스침이다/떨림이다/눈물이다/몸부림이다//더듬던/내 손끝에서/터져 나온/핏방울이다”(「시詩」)라고 노래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오랜 양식적 계승과 변형을 치러 오늘에 이른 현대시조는 정형 양식으로서의 기율과 감각을 통해 고유한 절제와 균형의 원리를 견고하게 지켜왔다. 그동안 우리 현대시조는 서구의 미학적 박래품에 대한 실천적 항체를 지속적으로 키워왔고, 서구적 특수성에서 자라난 여타의 역사적 장르와는 전혀 다른 고유한 언어적 토양을 만들어오기도 하였다. 다양한 원심적 파격(破格)이 부박하게 떠도는 우리 시대에, 현대시조는 이른바 ‘역진(逆進)’의 상상력을 통해 여전히 중요한 양식으로서의 가치와 의의를 지켜온 것이다. 다른 전통 양식들이 한결같이 사멸과 변형의 양상을 보인 것과는 달리, 시조가 이러한 생성과 창신(創新)의 길을 걸어갈 수 있었던 것도, 역진의 상상력을 통한 절제와 균형의 원리가 그 안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읽어온 것처럼, 김영주 시인의 첫 시집은 이러한 정형 양식의 위의와 현대적 감각의 활달함을 동시에 보여준 뚜렷한 성취로 기억될 것이다. 삶의 구체 속에 빛나는 연민과 사랑의 마음을 담은 그녀의 개성적 음역(音域)은, 시조 양식만이 가질 수 있는 고전적 서정과 함께, 삶의 이법에 관한 깊은 사유를 완미한 정형 양식에 담아낸 것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결실을 담은 첫 시집을 축하하면서 우리는, 그녀가 오랜 세월 시를 쓰면서 한 걸음씩, 천천히, 정형 미학의 새로운 진경(進境)으로 나아가게 되기를 깊이 소망해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