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숙한 소리의 대담한 기록 / 변현상
원숙한 소리의 대담한 기록
한밤중
위층 신혼부부
싸우는 소리 들린다
누가 들을까봐 두근두근 싸운다
입으론 아무 말 않고
삐그덕 빼그덕
싸운다
쿵! 큰방 문 닫는 소리
쾅! 작은방 문 닫는 소리
엉클어진 두 마음만 캄캄하게 들리더니
지금은 화해의 싸움을
진지하게
하는 중
(김영주 시집 <<미안하다, 달>>)
성(性)은 모든 생명체의 원초적 본능이다. 특히 만물의 영장인 인간적인 측면에서는 본능이
기도 하지만 삶과 존재의 근원이기도 하다. 영국의 평론, 비평가인 콜린 윌슨(Colin Wilson)
은 "가장 불가사의하고 가장 위대한 성의 신비는 인간 정신의 방대한 미개발 동력원이다."라
고 했다.
작품에 동원되는 신혼부부라는 명사와 시제 한밤중이 주는 의미를 깊게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타인과 타인이 만나서 하나가 되는 과정의 첫 단계가 부부이다. 그것도 타인男과 타인
女의 만남이니 아무리 신이 허락한 관계라고 해도 다툼이 왜 없을까? 쿵!, 쾅!, 문을 닫는 표현
에 힘이 넘친다. 삐그덕 빼그덕 싸운다고 묘사하는 화해의 싸움은 읽는 독자로 하여금 상상의
볼륨을 최고조로 울려버린다. 쿵쾅거리는 소리는 들었겠지만 진정 화해의 싸움은 들었을 리
만무하다. 따라서 진지한 화해의 싸움은 종족본능의 위대한 싸움(?)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기
때문이다.
사륵 사륵 눈 내리는 소리를 '여인의 옷 벗는 소리'로 표현한 김광균의 자유시 <설야>를 떠
올리게 하는데 직선적인 시어가 동원되지 않은 작품이면서 상당한 에로티시즘을 유발하는
능력이 가히 수준급이다. 경험에 기초한 자아 없이는 표현하지 못하는 시어이지만, 그렇다고
시인이 관음증을 가진 병자라고 결론하지 않는다. 큰 틀의 현대시조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큰
틀 안에 있는 작은 틀끼리 서로 경쟁하듯 묘사의 영역도 확장해 가야 한다. 따라서 性的인 시
어의 묘사라도 용감하게 계속 나와야 하지 않을까. 오종문 시인의 <오월은 섹스를 한다>
'천수관음이 되어 여자 밑에 누웠다가 거웃 하나에 눈이 멀었다'는 류제하 시인의 <천수관음이 되어>
목련이 피는 과정을 에로틱하게 묘사한 박영식 시인의 단수시조 <목련이 필 때> 등 이미
용감한(?) 시어를 사용한 시조작품이 있지만, 여류시인의 대담(?)한 묘사 "삐그덕 빼그덕"은
꽤나 오래 기억될 거 같다. (변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