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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숙한 소리의 대담한 기록 / 변현상

꿍이와 엄지검지 2013. 1. 7. 12:36

 

 

 

원숙한 소리의 대담한 기록

 

 

 

한밤중

 

위층 신혼부부

싸우는 소리 들린다

 

누가 들을까봐 두근두근 싸운다

 

입으론 아무 말 않고

삐그덕 빼그덕

싸운다

 

 

쿵! 큰방 문 닫는 소리

쾅! 작은방 문 닫는 소리

 

엉클어진 두 마음만 캄캄하게 들리더니

 

지금은 화해의 싸움을

진지하게

하는 중

 

(김영주 시집 <<미안하다, 달>>)

 

 

  성(性)은 모든 생명체의 원초적 본능이다.  특히 만물의 영장인 인간적인 측면에서는 본능이

기도 하지만 삶과 존재의 근원이기도 하다.  영국의 평론, 비평가인 콜린 윌슨(Colin Wilson)

은 "가장 불가사의하고 가장 위대한 성의 신비는 인간 정신의 방대한 미개발 동력원이다."라

고 했다.

 

  작품에 동원되는 신혼부부라는 명사와 시제 한밤중이 주는 의미를 깊게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타인과 타인이 만나서 하나가 되는 과정의 첫 단계가 부부이다.  그것도 타인男과 타인

女의 만남이니 아무리 신이 허락한 관계라고 해도 다툼이 왜 없을까?  쿵!, 쾅!, 문을 닫는 표현

에 힘이 넘친다.  삐그덕 빼그덕 싸운다고 묘사하는 화해의 싸움은 읽는 독자로 하여금 상상의

볼륨을 최고조로 울려버린다.  쿵쾅거리는 소리는 들었겠지만 진정 화해의 싸움은 들었을 리

만무하다.  따라서 진지한 화해의 싸움은 종족본능의 위대한 싸움(?)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기

때문이다.

 

  사륵 사륵 눈 내리는 소리를 '여인의 옷 벗는 소리'로 표현한 김광균의 자유시 <설야>를 떠

올리게 하는데 직선적인 시어가 동원되지 않은 작품이면서 상당한 에로티시즘을 유발하는

능력이 가히 수준급이다.  경험에 기초한 자아 없이는 표현하지 못하는 시어이지만, 그렇다고

시인이 관음증을 가진 병자라고 결론하지 않는다.  큰 틀의 현대시조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큰

틀 안에 있는 작은 틀끼리 서로 경쟁하듯 묘사의 영역도 확장해 가야 한다.  따라서 性的인 시

어의 묘사라도 용감하게 계속 나와야 하지 않을까.  오종문 시인의 <오월은 섹스를 한다>

'천수관음이 되어 여자 밑에 누웠다가 거웃 하나에 눈이 멀었다'는 류제하 시인의 <천수관음이 되어>

목련이 피는 과정을 에로틱하게 묘사한 박영식 시인의 단수시조 <목련이 필 때> 등 이미

용감한(?) 시어를 사용한 시조작품이 있지만, 여류시인의 대담(?)한 묘사 "삐그덕 빼그덕"은

꽤나 오래 기억될 거 같다. (변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