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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쟁이는 글 쓰는 일밖에 다른 건 나 몰라도 좋은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꿍이와 엄지검지 2013. 1. 10. 14:59

 

 

글쟁이는 글 쓰는 일밖에 다른 건 나 몰라도 좋은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김영주 

 

십오만 원 때문에 두 목숨을 잃었습니다.

백오십만 원도 아니고 천오백만 원도 아니고 육 개월 전깃불 값 십오만 원 때문에.

그 캄캄한 냉방에서 촛불을 사이에 두고 할머니와 손자가 나누었을 이야기는

듣지 않아도 보지 않아도 그냥 눈물입니다.

전 재산 28만 원뿐인 거지 대통령이 사는 나라의 판타지동화였으면 좋겠습니다.

 

시를 쓰기 전, 내가 읽은 시집에선 향기가 났습니다.

그런데 시를 쓰고 난 뒤부터 그 향기가 사라졌습니다.

착하고 고운 것만 시가 된다면 세상은 참 아름다운 것일 텐데 말입니다.

권력 앞에서는 참을성을 보이며 큰소리 한번 쳐보지 못한 새가슴,

그것이 스스로 분하고 억울하여 끓어오르는 분노를 추스를 길 없어

손톱을 세워 아무라도 들이받을 기세로 자판기 위를 치달리곤 하지만 공허합니다.

 

뉴스(News)는 더 이상 새것(New)이 아닌 지 오래여서

어제의 볼썽사나운 일들이 오늘 또 벌어지고 내일 또 여지없이 반복될 줄을 압니다.

 한 마리 비루한 양마저 쓸어 담으려하는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거머쥔 살진 손아귀는 거역할 수 없을 만큼 힘이 셉니다.

생물들이 더 이상은 살 수 없다고 습지를 떠나려 하는데

뉘우침 없는 거대한 삽질은 멈출 줄을 모르고 강바닥을 깎아 물 위에 기름을 띄웁니다.

 

빌려 쓴다는 산과 땅과 물을 후대에게 돌려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입니다.

그냥 이대로 나만 배터지게 잘 살다 이 땅을 떠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 모두가 착한 백성들과는 무관하게 하지 말라고 말려야할 이들이 저지르는 만행입니다.

희망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닌 외면할 수 없는 우리의 일입니다.

 

주머니 뒤져봐야 뒤지는 손가락 다섯 개가 가진 것의 전부이지만

땅을 파든 글을 쓰든 그 손가락 다섯 개만 열심히 움직이면

배고프지 않은 정직한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디자인 한국>을 위해서 더 이상 도구로 사용되는 목숨이 없기를 바랐습니다.

사람은 결코 사람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죄 없이 단 한 사람도 함부로 취급당해야하는 인권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수없이 되풀이한 실수 부디 앞으로만은 더 이상 반복되어선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작가>의 사명인 것을 압니다.

작가가 시대를 감시하는 감시자가 되지 않는다면 그건 작가일 수 없습니다.

시대의 상처나 그늘을 함께 내 것처럼 아파하고 나눌 수 있어야 작가입니다.

 

시 한 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

글 한 줄 써보지 않은 사람이 사람을 다스릴 수는 없습니다.

작가는 사람을 다스리기를 원하지 않지만 사람을 다스리는 마음을 압니다.

그것을 널리 알리기 위해 펜의 힘이 강하다 하니 한 번 믿어볼 밖에요.

 

부디, 작가가 글 쓰는 일밖에 다른 건 나 몰라라 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이 혹한에도 집으로 가지 못하고 칼바람과 맞서 생존권을 위해 싸워야하는

이 땅의 한 가장과 홀어머니와 아들과 딸의 고통을

<작가>는 너무나도 잘 알기에 올 겨울도 여지없이 춥습니다. 

 

2013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