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의 힘을 한 번 믿어 보겠습니다
펜의 힘을 한 번 믿어 보겠습니다
김영주
거세개탁(擧世皆濁). 2012년을 대표하는 사자성어로 대학교수들이 "온 세상이 모두 탁하다" 즉, 온 세상이 모두 탁해 지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바르지 않아 홀로 깨어 있기 힘들다는 뜻의 '거세개탁'을 뽑았다고 합니다. 그들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사람으로서 이 말은 많은 책임감과 동시에 작가의 사명감과 사회적인 영향력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곳곳은 정말 많은 상처들로 인해 치유하기 힘든 절망적인 상태로 몰아가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얼마 전 신문기사에 단칸방에서 사는 할머니와 외손자가 십오만 원의 전기요금을 체납하였다는 이유로 단전조치를 당해 촛불을 켜고 잠들다 이불에 불이 옮겨 붙어 목숨을 잃은 화재사건은 정말 안타깝기 짝이 없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지금 이 시간에도 먼 아프리카 빈민국에 후원과 봉사활동을 하고, 심지어는 이웃나라 일본의 지진피해에도 인류애를 발휘, 일부 시민들과 많은 연예인들이 눈물을 글썽이며 거액의 돈을 기부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단돈 15만원을 도와주지 못해 외로운 우리 이웃의 소중한 생명을 잃어야만 하는 현실의 아이러니는 혼란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글을 쓰는 작가들은 독자가 되어주는 주변의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는 것이 옳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사회 현상을 외면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고민하게 됩니다.
'거세개탁'과 같은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들을 어떻게 맑게 치유해야 하겠습니까? 케네디 대통령은 갯벌에 있는 많은 배들을 한꺼번에 들어 올릴 수 있는 길은 밀물(거시적인 제도의 경제해결책)이라 말했다고 합니다. 정녕 우리사회의 많은 문제들을 이와 같이 밀물처럼 명쾌하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그럼 그와 같은 밀물을 누가 어떻게 끌어들여 그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고 서로 만족하는 사람다운 생활을 할 수 있을까요.
장하준 교수는 '200년 전에 노예해방을 외치면 미친 사람 취급을, 100년 전에 여자에게 투표권을 달라하면 감옥에, 50년 전에 식민지에서 독립운동을 하면 테러리스트로 체포되어 극형을, 그러나 단기적으로 보면 불가능해 보여도 장기적으로 보면 사회는 계속 발전하는 것이니 지금 당장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대안을 찾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작가는 정치가나 사회운동가처럼 직접 나설 수는 없지만, 사회문제의 해결을 위한 대안을 제시하고 공감을 끌어내어 영향력을 행사하는 시대정신을 만들어 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곧, 또 다른 형태의 전쟁이어야 합니다. 전쟁터에서는 반드시 이겨야하고 이기지 못하면 죽어야 합니다. 그럴 각오로 싸워야한다는 말입니다. 싸워서 이기면 좋고 지면 양보하겠다는 식의 싸움이 아닌 것입니다. 작가의 싸움은 사람의 마음을 다스리는 싸움인 것이고 그것은 우리의 펜이 무기가 될 것입니다.
사물의 인식과 사유의 표현은 작가의 언어로 표시됩니다. 다시 그 언어는 또 다른 사물인식과 사유에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결국 뜻을 같이 하는 하나하나가 모여 큰 바다를 이루듯 우리도 가까운 곳을 먼저 헤아리고, 소통하며,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야할 것입니다.
저는 이제 펜을 뽑았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작가>와 더불어 펜의 힘을 한번 믿어보고 싶습니다.
- 한국작가회의 회보 2013_8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