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주의 <<미안하다, 달>> 1000자 서평 / 이송희
김영주 <<미안하다, 달>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이송희
2009년 <<유심>>을 통해 등단한 김영주 시인의 첫 작품집 <<미안하다, 달>>은
세상의 적요로운 풍경들을 사랑으로 감싸 안은 따뜻한 흔적이다.
타자의 삶을 연민과 사랑으로 끌어안는 이 시집 속에는 고향과 어머니,
가난하고 슬픈 이웃들, 자연사물들이 숨쉬고 있다. 그래서 달은 "천의 얼굴 가졌"을까?
시인은 달의 "둥근 품안에 든 무량한 이야기들"속에 적지 않은 비밀이 담겨 있음을 고백한다.
"애벌레 앉은 잎을 조심스레 따내" (<어머니의 농사법>)던 어머니의 모습과,
"한 줌 빛 들지 않는 그림자도 숨진 방"(<쪽방촌 -도시경쟁력 12위, 서울>),
폐지를 주우며 생을 연명하는 할머니와 같이 힘겨운 삶을 견뎌가는 수많은 존재들의
아픔과 슬픔에 관여하며, 가까이 있어도 외로운 그들의 삶을 늘 그리워하는 존재가 김영주 시인이다.
<물의 화엄>을 살펴보면, 하늘 아래 있는 모든 것은 다른 것과의 관계 속에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조화의 정신인 화엄사상을 시인은 우리의 삶의 공간으로 가져온다.
모든 것과의 관계 속에서, 서로 원인이면서 결과일 수 있는 자세로 우리는 존재한다.
나와 남의 구별이 없는, 조화로운 세계에 대한 지향은 시인의 시 전편을 아우르는 특징이다.
시집의 권두시로 실려있는 이 시는 제 몸에 상처를 견디며 타인을 보듬을 줄 아는 둥긂의 미학을 실헌한다.
"한바탕 소용돌이 휩쓸고 간 모래톱"으로 표상되는 세상에 "깨진 병조각"이 시퍼렇게 꽂힌 흔적들이 역력하다.
마치 자본의 욕망이 휩쓸고 간 현대사회의 거리처럼, 이 곳은 "누구든 스치기만 해도 / 살을 쓰윽 벨 기세"다.
'너'를 보듬었다가 돌아서고 눈물을 삼키면서 또 돌아서는 '파도'는 화자를 수없이 위로하며 제 몸을 깎는 존재다.
고통의 순간들을 감수하면서도 타인의 상처를 핥아주고 보듬어 줄줄 아는 사랑과 연민의 풍경을
"깨진 병조각"에 제 혀를 자꾸 베인다는, 파도를 통한 몸의 상상력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또한 2수에서 보이는 "보듬었다간 돌아서고"의 반복과 종장 둘째 수 "자꾸 베이며"라는 부분은
"둥글게 내주는 몸"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효과를 준다.
바닷가의 모래톱에 파도가 치는 풍경을 우리 삶의 공간으로 옮겨오면서 고통을 감수하며
타인의 상처를 핥아주는 정신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시인은 숱한 날들이 지나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그제야 날(刃)을 버리는 존재로서의 삶을 지향한다.
"~후에"라는 반복적 리듬은 역시 시간이 오래 흘렀음을 환기한다.
반복과 은유의 구조 속에서, 타인을 보듬을 줄 아는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형상화한
시인의 의도가 모래알처럼 아름답게 빛나는 시다.
대나무의 생태를 우리 삶의 과정에 비유한 <마디가 큰다>에서는 비움에 대한 진정한 가치를 통해서
뼈아픈 고통의 시간을 견디며 살아가는 실존적 존재로서의 인간들, 그 사유의 마디를 경험하게 한다.
시인은 살면서 두려운 건 죽음이 아니라 "삶이란 걸 알았다 // 보내고 / 혼자 남는 일 / 슬픔조차 / 모르는 일"
(<치매병동에서>)이라는 깨달음을 얻으며 자신의 삶을 성찰한다.
"가는 길 마냥 바빠 하늘 한 번 못 쳐다보고 // 꽃잎에도 돌멩이에도 눈 맞추지 못했"(<만행(卍行)>)던
오늘을 반성하던 시인은 "발걸음 느리게 놓으니 // 풀벌레가 다 웃"는다는 깨달음을,
삶의 고통스러운 마디를 만지면서 인지하게 된 것일까.
"저 한 몸 달랑 들어갈 / 걸망 하나 지고 가다 // 아니다 / 이 집도 크다 / 다 버리고"(<탁발>)
가는 달팽이를 통해서 시인은, 우리 삶이 허위와 욕망, 인간의 내면에 도사린 욕망들을 다 내려놓고
비움으로써 비로소 충만해진다는 것을 일깨운다.
- <<오늘의시조>> 2013년 제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