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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평론) 맨발의 詩眼이 밀어 올리는 畏敬의 시

꿍이와 엄지검지 2013. 5. 16. 09:13

맨발의 詩眼이 밀어 올리는 畏敬의 시

                                                                                      정용국

 

- 이시인을 주목한다-

 

〈이태순 작품론〉

 

                                                 

    이태순의 근작 다섯 편을 받은 지 꽤 오랜데 아직도 들척거리고만 있다. 그것도 모자라 그의 첫 시집 『경건한 집』을 다시 두 번 읽었다. 이태순이 만지작거리고 되씹는 사물과 생각의 끝은 늘 작고 고만고만할 뿐 아니라 삶의 귀퉁이에 있어 그냥 지나치기 쉬운 것들이 많다. 『경건한 집』의 작품해설을 쓴 유성호 교수도 이태순의 시를 ‘생성되는 에너지보다 소멸되어 가는 순간을 잡아 노래하려는 시인의 심미안이 반영되어 있다’ 라거나 ‘한적하고 삭아가는 풍경 속에서 이태순의 시학은 발원하고 완성되는 것이다’ 라고 적은 바 있다. 그렇다면 ‘소멸되어가고 삭아가는’ 것에서 어떤 이미지를 끌어내기 위해 이토록 쭈물대는 것일까. 이러한 그의 집착은 역설적으로 말해 ‘소멸되어가는 과정’ 이 바로 생명의 부활이며 삶의 원천이라는 소신을 확고히 믿기 때문인 듯하다. 이런 생각들은 우주의 오롯한 순환을 이해하고 공손하게 받들어 심연에 이르지 않으면 찾아내기 어려운 윤리관이라 할 수 있다. 아직 극점을 통과하지 않고 지속되고 있는 그의 시작법을 근작을 통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봉긋봉긋한 뒷산을 허기 진 새가 넘어올 때

   고모가 씌워놓은 사과봉지 서너 개를

   겉늙은 사과나무는 슬며시 벗겨냈다

 

   달뜨는 우물가 우물을 퍼 마시고 자란

   모과나무 휜 가지 가을이 깊을 무렵

   고모네 장지문에도 모과빛이 돌았다

 

   초저녁잠 많은 고모 두잠 째 달게 들고

   맨발로 쪼그려 앉은 올망졸망 장독들이

   까만 눈 반짝거리며 도란대고 있었다

 

                                                -「고모네 집」전문 -

 

 

   세 수로 엮여진 이 작품은 각 수가 일정한 독립성을 가지고 존재하지만「고모네 집」을 향하여 유기적인 구조를 형성하고 있어서 큰 틀에서 내려다보면 재치 있게 나열된 소품들이라 하겠다. ‘사과나무’ ‘모과나무’ ‘장독’ 들의 이미지가 모이면 「고모네 집」이 점묘화처럼 돋아 오르는 아련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겉늙은 사과나무’ 나 ‘달뜨는 우물’ 그리고 ‘올망졸망 장독들’ 같은 늙은 이미지들은 독자들을 이끌고 수십 년의 시간을 되돌아 갈 수도 있고 현실과 맞닿아 있는 그 자리에 현존하며 삭은 것들이 품어주는 따듯한 현실을 느끼게 해주기도 한다. ‘허기진 새’에게 몸을 내주는 ‘겉늙은 사과나무’ 를 통하여 고모의 정을 진하게 느끼게 해주는 장면과 여타의 상상력들은 서정의 튼튼한 주축을 이루며 시를 지탱하고 있다. 이렇게 작고 낡은 소재들을 가지고 시작하는 이태순의 시법은 천천히 시간을 거슬러 오르며 숙성되고 농익은 삶의 맛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사과봉지 서너 개를' '슬며시 벗겨' 내는 시인의 상상력은 얼마나 따듯하고 정겨운 가. 고모가 알면 역정을 낼지 모를 일이지만 '고모네 집'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고 '맨발로 쪼그려 앉은' 장독 속에서 몽실몽실 피어날 된장을 생각하면 누구라도 덩달아 고모가 보고 싶어질 것이다.

 

 

   햇살 몇 개 부러진 오후만큼 기울어진

   둥근 꽃밭 확 펼치자

   무더웠던 그 여름

   울 엄마

   꽃송이 지고

   내 생이 든 꽃그늘

 

 

   꽃물이 뚝뚝 질까

   아까워 들지 못했을,

 

 

   입술연지 훅 퍼지는

   꽃밭 빙빙 돌리며

 

 

   접었다 펴보는 사이 간간이 꽃이 피네

 

                                                                           -「협립양산」전문 -

 

 

   한 때 그 유명했던 ‘협립양산’ 은 도시 여인들의 필수품이었다. 끼니를 마련하기에 급급했을 시골에 사는 엄마들에게는 거의 사치품에 속하는 양산 하나가 울컥 자식의 누선을 자극한다. 양산에 요란하고 화려하게 수놓아진 그림은 여인들이 꿈꿀 수 있는 상상의 꽃밭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화려하고 너무 진한 밑그림이어서 더욱 촌티 났던 양산마저 이제는 어머니를 향한 아련한 추억이요, 그리움이며 먹먹함이다. 이렇게 오래된 양산을 통하여 어머니를 추억하고 돌아오는 시의 여정은 안타깝고 그리움이 돋는다. '울 엄마/ 꽃송이 지고/ 내 생이 든 꽃그늘' 어머니의 세대가 지나가고 그 자리에 문득 내가 서 있다. 길어야 30년의 세월인데 우리는 짧은 시기에 너무 많은 것을 이루었고 그 대신 많은 정신의 줄거리들을 잃어버렸다. 문명의 이기가 넘치는 시대에 그깟 양산 하나를 거들떠보는 이 없지만 엄마에게 사드렸던 '호사스런 양산' 은 모녀가 지워 버릴 수 없는 진하고 눈물겨운 삶의 대목이었을 것이다. 오랜만에 다시 펴보는 어머니의 꽃밭은 이미 쇠잔해져 표현할 길이 없고 '접었다 펴보는 사이 간간이 꽃이 피네' 라고 문을 닫지만 그 간간이 피었다 진 '꽃' 은 두 모녀만이 오롯이 기억할 수 있는 눈물겹고 곡진한 인륜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잘 펴지고 접히던 우산살은 다 삭고 녹이 슬었지만 그 녹이야말로 우리가 함부로 털어내서는 안될 인간의 흔적이고 삶의 우수리라고 해도 되겠다.

 

 

   맨정신에 갈 수 없어 가을은 불콰하다

 

   열꽃 피나 싶더니 젖몸살 다시 앓아

 

   한 모금 마시다 떠난 달빛 휘 저어보는

 

   까맣게 젖은 잎들 깍지 낀 손을 풀고

 

   갈꽃, 입김 피우는 먼 강의 기침소리

 

   배 한 척 가는가보다 느리게 가나 보다

 

                                          -「먼 곳」전문 -

 

 

   떠밀려 다다른 곳 무거워서 미안하다

 

   묵묵히 살아온 죄 지고 끌고 오르며

 

   한 순간 탁 놓고 싶은, 절정 뒤 끝물처럼

 

   벼랑 비틀 건너는 외발의 수레바퀴

 

   한계령 지나는 건 배 한 척 만나는 일

 

   희끗한 억새꽃 너머 외발의 저 뒷모습

 

                                           -「끝물처럼」전문 -

 

 

   두 편의 시제가 마냥 느리고 아득하다. 흑백 무성영화의 한 대목처럼 흐르는 시의 분위기가 두 편을 하나로 묶어도 좋을 만큼 흡사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시제의 추상성이 각 두 수로 이루어진 시의 전편을 관류하며 장중하고 아스라한 감정의 계곡을 흐르면서도 발은 물에 젖지 않게 균형을 견지하려고 애쓴 모습이 뚜렷하다. 열꽃 젖몸살, 기침소리, 절정, 벼랑, 외발, 등의 시어가 두 시의 분위기를 말해주고 있다. 상당히 관념적인 것 같아도 눈을 감고 시를 다시 음미해 보면 수묵담채가 아련한 '배 한 척'이 생의 하구를 빠져 바다로 향하고 있는 모습을 어렴풋이 감지할 수 있다. 두 편의 시에 똑같이 등장하는 이 '배 한 척' 은 거의 유사한 이미지로 해석해도 무방할 듯하고 '갈꽃' '억새꽃' 또한 두 시의 배경을 설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사실 이렇게 추상적인 제목과 시어를 가지고 그림이 그려지는 시의 분위기를 엮어가는 것은 상당한 난관을 극복해야 얻어 낼 수 있는 것임을 고려할 때 새삼 이태순 시의 저력을 짚어볼 수 있는 것이다.

 

  「먼 곳」은 마치 음력 시월을 별칭하는 소춘의 분위기를 연상케 하고 있다. 추워지는 가을에 다시 봄의 정취를 느끼는 착각은 어쩌면 행복한 것일지도 모른다. 침잠해서 가만히 촉각을 누르는 가운데 나는 배 한 척이 되어 느릿느릿 나아가는 모습이 아련하다. 우리 인생은 그 '먼 곳'에 이르러 닻을 내려야 하는 것이니 조금 더 낮은 곳으로 엎드리고 다가가야 하는 삶의 자세가 그려진 듯도 하다. '벼랑 비틀 건너는 외발의 수레바퀴' 는 우리의 삶 자체를 아주 극적으로 표현한 긴장된 구절이다. 온전한 양발로 건너기도 어려운 벼랑을 외발로 건너가는 삶은 얼마나 무섭고 고될 것인가. 그 가운데 '배 한 척 만나는 일' 은 커다란 위안이 될 수도 있겠다. '희끗한 억새꽃 너머 외발의 저 뒷모습' 도 '절정' 은 아닐지라도 세월의 흔적이 진하게 묻어나는 우리 삶의 참모습들이다. 이렇게 미루어 생각해보면 이 시 한 편 속에는 어떤 삶도 다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어서 '끝물' 은 귀한 여정의 결과물이라는 무거운 화두와 만나게 해주는 뒷심이 숨어 있다. 작고 소소한 것에서 나오는 이런 '뒷심' 이 이태순 시의 가장 큰 매력이다.

 

 

   죽어서도 살아서도 물을 딛고 바라보는

 

   왕버들 백년의 눈빛 지척에 둔 별리입니다

 

   물빛을 길어 간 그 별 발자국이 남았습니다

 

   가물어 바짝 타는 나의 전답을 댑니다

 

   물꼬를 터 놓습니다 진초록 앞섶입니다

 

   원시의 젖을 물리는 물안개 낀 새벽입니다

 

                                            - 「주산지」전문 -

 

 

   청송 주왕산 밑 주산지는 산 속의 절경으로 이름이 나있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촬영지로 더욱 많이 알려지게 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인은 절경에 눈길을 주면서도 '저수지' 라는 근원적 이치에 매달려 시의 격을 높여 간다. '물빛을 길어 간 그 별 발자국' 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물의 근원에 '바짝 타는 나의 전답' 을 대고 무량하고 감격스럽게 물을 받는다. 주산지 밑 많은 전답이 물을 받아 풍부해지듯 어머니의 젖을 물고 자애로운 엄마와 눈을 맞추며 기운을 받는 성스러운 모습이 활짝 펼쳐지고 있다. '원시의 젖을 물리는' 주산지는 물로 상징되면서 더 확장된 의미인 '정신적 근원' 으로 승화하고 있다.

 

   이태순의 근작 다섯 편을 살피며 다시 한 번 그의 작은 소재와 소소한 이야기 거리가 활짝 피어나 시공을 넘나들며 얼마나 우리의 감정을 간질이고 긁어주는 지 느껴보았다. 마치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고 스미며 타는 갈증을 해소해주는 상선(上善)을 실천하는 것처럼 그의 시가 낮게 더 낮게 임하는 것을 보며 작고 삭은 우리들의 과거와 결핍이 더 이상 곤경의 장이 아니라, 친근하게 다가와 현실을 보듬고 불화를 해소하며 감칠맛 나는 감정의 세계로 이끌어 가는 질긴 동아줄이라는 생각을 감출 수 없는 것이다.

  발췌 :《시조시학》 2012, 겨울

 

 

정용국

경기도 양주 출생

2001년 시조세계로 등단.

이호우시조문학상 신인상, 가람시조문학상 신인상 수상

시집《명왕성은 있다》외 다수

 

출처 : 오늘의시조시인회의
글쓴이 : 변현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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