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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교보문고 낭독공감 >디카시와 함께 가을 저녁을

꿍이와 엄지검지 2014. 11. 6. 10:49

<교보문고 낭독공감 >디카시와 함께 가을 저녁을

 

김영주

 

우연일까? 교보문고에서 <디카시 낭독공감>하는 날은 계절비가 촉촉히 내렸던 것 같다.

가을의 초입, 디카시 낭독공감이 있는 시월 첫째 주 목요일.

그 날도 아스팔트길이 촉촉히 젖을 만큼의, 누군가가 마음에 스며들기 딱 좋을 만큼, 그만큼의 비가 내리고 있었다.

목요일은 광화문 교보문고의 배움홀에서 문학을 위한 장이 펼쳐진다.

교보문고의 낭독공감은 시, 소설, 아동문학, 그리고 디카시가 당당히 자리를 얻어 계절 행사를 치루고 있다.

이번 가을 낭독회에는 멀리 남쪽에서 이기영 시인이 참석한다는 연락도 받았고,

서울 경기지회 식구들의 모임도 자연스럽게 얹힌 까닭에 반가운 얼굴들을 보기 위해 서울행 전철을 탔다.

광화문역에서 내려 교보문고로 들어가며, 준비해온 유인물 몇 장을 출입구 유리문 눈높이에 붙인다.

이 정도로 시선을 끌 수 있을까.

아무런 꾸밈도 무늬도 없는 A4용지를 위아래로 두 개 이어 붙여놓고 나니 참 소박하다 싶다.

 

 

 

행사가 시작되기 15분쯤 전, 아직 우리 식구들은 아무도 오지 않은 배움홀 안에

혹시나 싶은 아리따운 여인이 앉아 있다.

"이기영 선생님?"

", 김영주 선생님?"

역시나 이기영 시인이었다. 우리는 십년 전 부터 알고 있었으면서 방금 상봉한 사람들처럼,

방금 만났으면서도 십년 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람들처럼

그렇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서로의 모든 무장을 해제하고 반가운 포옹을 했다.

그 와중에도 내게는 그녀가 들고 온 카메라가 깜짝 반가우며

변변찮은 기술로 폰 사진을 찍어 사진 올리기에 서툴렀던 그간의 내 직무를

 이번에는 유기해도 되겠구나 하는 빠른 셈이 지나간다.

, 볼 만한 사진과 함께 멋진 낭독 후기를 볼 수 있겠구나.

아닌 게 아니라 내 기대는 예상을 빗나가지 않고 그녀의 인사동 답사기부터 근사한 참관기를 만날 수가 있었다.

 

 

 

이재훈 시인은 디카시를 처음 쓴다.

디카시가 어떤 것인지 잘 몰라서 이렇게 긴 시를 썼다고 부끄러워하는 이재훈 시인.

다음에는 제대로 된 디카시를 써 보겠노라고 약속한다.

그러나 처음 써본 시인의 시가 참 좋다. 차마 버리기 아까운 시어들이

시인을 낭독공감 무대까지 따라왔을 것이다.

그의 신발처럼 살짝만 벗기만 하면 될 것 같은 그의 처녀작 <신발>

 

제일 먼저 벗게 되는 너의 실체

온몸을 온종일 받아들인 저 빈 껍데기

어떤 곳에서는 신발을 벗었을 뿐인데 숭고해진다.

온몸을 내보여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 도시에

너무 오래 살았다.

단지 신발을 벗었을 뿐인데

부끄러워 자꾸 고개를 숙였다.

모두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었다

고요한 미소가 입가에 잠시 머물다

신발에 살포시 앉았다.

- 이재훈, <신발> 전문

 

이재훈 시인의 <신발>이 내 <신발>이라면 나는 어디를 덜어낼까, 고민해본다.

신발을 벗었을 뿐인데 부끄러워하는 사람과, 온몸을 다 내보여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이 도시.

어디 도시 뿐인가. 자기 자신만 모르고 세상사람 다 아는 부끄러움을 인간은 안고 살지 않는가.

젊고 인물 좋고 선해 보이는 시인을 앞으로도 계속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끝내 닿을 수 없어 더욱 아득한' 그리움을 노래한 임동확 시인의 <그리움>,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고 살래살래 고개를 젓'는 최종천 시인의 <코스모스>,

'누군가가 맛있게 먹어만 주어도' <신의 축복>이라는 김상미 시인,

 '말 언어들, 세상은 온통 혼돈이라는 김정수 시인의 <바벨탑>,

 '혼자가는 산길 길동무 하자고 손 내미는' 최춘희 시인의 <섬초롱꽃>,

 '세상의 그림자가 가장 길 무렵 허공에 드리운 닻을 조용히 거두는' 이성렬 시인의 <수국>,

 빨간 꽃에게서 '황혼이 되자 더욱 바빠진 순천만의 새'들을 찾아 읽어낸 정병숙 시인의 <초경>에서

 우리는 시인의 끝도 없는 상상력과 창조의 힘을 발견한다.

 

하필 그 시각 그 십자가 그 하늘 위에서 '너는 틀렸다고' '가위'표도 아니고 '엑스'표도 아닌

'가께'표를 치고 가는 비행운을 그린 나석중 시인의 <심판>.

나석중 시인의 '가께'표는 꼭 놓여야할 자리에 놓여야하는 단어의 말맛을 다시 한 번 상기하게 하였다.

문학에, 예술에 국경이 어디 있을까만 시인의 서정이 형성되던 그 시기에

시인을 지배했던 언어가 있었으니 싫어도 꼭 그 뉘앙스가 아니면 전할 수 없었던 안타까움,

그래서 시인은 그 난감한 표기를 차마 써넣지 못했다는 고백을 털어놓고 만다

 

 

 

 

서로 으르렁거리는 길고양이를 보고

'자기의 이념과 상관없이 내몰려 대치해야만 하는 이 땅의 아들들'을 본 김영주의 <누가>,

'생의 뒤안길 앞서거니 뒤서거니 가고 있는 두 노인'에게서 엿보는 이기영 시인의 <인생>' 에서부터

디카시 독자였다가 디카시에 푹 빠져 시인으로 등단했다는 손종수 시인,

기자로 디카시를 알게 되어 독자가 되었다가 디카시 작가가 된 김용길 님의 <동행>,

머니투데이 기자로 근무하다가 최광임 시인의 페이스북 마니아가 된 신혜선 님의 <그림자>,

그리고 또 다른 독자로 교보문고 낭독공감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이신임 님의 <가슴 속엔 나비> 등등,

그렇게 시인과 시를 만나 가을밤은 깊어갔다.

 

 

 

 

 

 

그리고모든 일의 시작은 모든 일의 끝에서부터라고 하지 않았던가.

디카시 낭독이 끝나고 우리는 디카시의 새 역사를 창조하기 위하여 모두가 뒤풀이 자리로 옮겼고

가쁜 숨을 고르기 위해, 마른 목을 적시기 위해, 또 하나의 몰캉한 쉼표를 열심히 찍고 있었다.

가을밤이 깊도록 서로가 불러주는 권주가는 감미로웠고 모두의 가슴에는 따뜻한 군불이 지펴지고 있었다.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은 늘 그렇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나는 언제나 믿으니까. 디 엔드.

 

 

출처 : 디카시 마니아
글쓴이 : 김영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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