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의 시적 형식으로서 행갈이와 연 구성 / 홍성란
열다섯 살 순이의 파랗게 질린
시조의 시적 형식으로서 행갈이와 연 구성 / 홍성란
[월평 시조] 중에서 발췌
시조, 우리 민족의 양식적 원형
‘엄마!’
와
손을 놓친 엄마의 피를 토하는
‘순이야!’
팔십 년
그 누구에게도
위안 받지
못한
꽃—김영주 〈위안부(芙)〉(《나래시조》 2012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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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 |
각주에서 밝힌 것처럼, 식민지 시대 침략군은 어린 딸을 빼앗아 갔고 순이는 그로부터 80년 동안 그 어디에서도 위안받지 못했다. 위안부의 부 자를 연꽃 芙로 하여 이 작품은, 그 외로움과 고통 속에 사셨을 20만 위안부 할머니들께 올리는 헌시가 되었다. 〈위안부(芙)〉는 4연 10행의 개성적인 시적 형식이다. 초장 행말의 접속조사 “와”를 단독행 단독연으로 구성한 점이 멋스럽다. 비극이 시작되는 “엄마!”라는 단말마와 “순이야!” 부르는 모성의 절규에서 소름이 돋는다. 이 비극은 진행형이다. 20만 순이는 누구에게도 위안받지 못한 채 사위어가고 있다. “와”를 포함하여 초장과 중장에서 율격행이 작품시행으로 나뉘는 지점은 발화의 강조점이다. “와”는 접속조사이기에 단말마와 절규를 이어주면서, 독립연 독립행으로 하여 이 사건을 부각시키는 역할을 한다. 종장에서는 셋째 음보까지 음보단위로 행을 배열하고 말음보는 어절 단위로 분할하였다.
율독과는 무관하지만, 이런 행 배열은 낭독에서는 의상(意象)의 지연효과를 유도하면서 여운을 준다는 점에서 시조의 맛과 멋을 지닌 시적 형식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을 두고도 시단에서는 ‘시조를 현대적으로 보이게 하려는 작업이 오히려 형태적 정체성을 혼란스럽게 한다’며 시조가 아니라 “시네?!” 할 것이다.
홍성란 / 시인. 1989년 중앙시조백일장으로 등단. 시조집 《겨울 약속》 《바람 불어 그리운 날》 등이 있고, 시조선집 《명자꽃》 《백여덟 송이 애기메꽃》과 시조감상에세이 《하늘의소리, 땅의소리―백팔번뇌》 등이 있다. 유심작품상, 중앙시조대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등 수상. 현재 성균관대 강사, 유심시조콘서트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