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현 '가을 일기' / 김영주 - <<유심>> [90호]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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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현 ‘가을 일기’ / 김영주 | ||||||||||||||||
절대고독의 피안에서 / 김영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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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라는 말. 그것도 인생의 가을쯤에서, 하루의 가을 무렵 가을 일기에 적은 ‘혼자’라는 말. 어쩌다 혼자가 되었는지는 궁금하지 않다. 우리는 항상 혼자여서도 혼자였고 둘이어서도 혼자였다. 혼자가 외로워 혼자 아니기를 갈망하면서도 자의든 타의든, 결국은 또다시 혼자로 돌아와 혼자가 된 혼자를 견딘다. 혼자라는 지독한 외로움은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고통이지만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인간의 특권이기도 하다. 시인은 왜 혼자가 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지극히도 담담하게 숙명처럼 수용하는가. “고개 숙이고 혼자서 순대국밥을 먹어본 사람은 들키지 않게 고독을 넘기는 법을 안다(최영미)”고 했다. 우리는 ‘혼자’라는 터널을 끊임없이 드나들어 보았으므로 외로움이 어떤 맛이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 사랑이나 그리움 따위, 원망이나 증오의 감정마저도 다 떠나가고 모든 인연의 고리가 끊어지는 날, 우리는 ‘혼자’라는 절해고도에 갇히기도 하지만 ‘혼자’가 손짓하는 자유, 해방, 관조 등의 사유는 내 안의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천혜의 기회이기도 하다. 혼자 밥 먹고 혼자 논다. 적막한 사위, 책을 펼쳐 눈으로만 읽다 깜박 존다. 나를 잊고 책 속의 길을 사색으로 걷는다. 그 안의 고독한 내 자의식은 절대 고독으로 승화하는데 순간 잠든 영혼을 깨우는 건 기계음이 아닌 자연의 새소리여야 하고, 잎을 떠나보내는 나뭇가지의 흐느낌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자연의 수순을 밟더라도 이지러진 현실로 인하여 혼자 눈 뜨는 아침이 반복되는 일상은 견디기 어렵다. 새들은 잠들지 않는 시계처럼 노래하나 고독한 시인은 새들마저 자기 곁을 떠났다고 믿는다. 어쩌겠는가. 한때 무성했던 나무도 잎이 지고 가지가 꺾이면 날아와 지저귈 새가 없으니 인생의 가을도 병들고 쇠하면 그 수심이 깊고 아플밖에. 고독의 자리는 춥고 어둡다. 고독 앞에서 인간은 견딜 수 없는 외로움에 숨을 쉴 수 없겠지만, 시인은 그 고독과 한몸이 되어 시로 승화하는 업을 수행하고 있다. 삶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야 하는 것이므로, 인간에게 주어진 고독 또한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깊어질 대로 깊어진 가을, 삶을 의무로 보는 시인에게 내가 빙의되고 있다.
김영주 ozkim1999@hanmail.net / 2009년 《유심》 등단. 시집 《미안하다, 달》이 있음. 경기문화재단, 서울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