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연시조

오리야, 날아라 / 김영주

꿍이와 엄지검지 2016. 4. 1. 16:35

 

 

오리야, 날아라

 

김영주

 

모처럼 오리들이 넓은 마당으로 나왔다

축축하고 좁아터진 사육장을 벗어나

제 발로 이렇게까지 멀리 걸어 나왔다

 

코를 찌르는 소독비를 온몸에 뒤집어쓰고

행여 줄 놓칠까봐

뒤엣놈은

앞엣놈을

어디로 가는 줄도모르고

설레며설레며

따라간다

 

차고 맑은 겨울 공기 하도 달고 맛나서

병든 오리도

꽥꽥 -

성한 오리도

꽥꽥 -

꽝꽝 언 포크레인 구덩이로

뒤뚱뒤뚱 몰려간다

 

 

<문학의 오늘>  2016 봄호


            시작노트

            눈만 뜨면 보고 듣는 '살기(殺氣)'가 죽기보다 무섭다.

            '생명 존엄'이라는 말은 오래 된 고사성어 같다.

            시를 쓰는 한, 시 쓰는 사람의 의무를 잊지 말자 했던 향기로운 맹세는

            다 어디로 갔는지, 살을 꼬집어도 통증을느끼지 못하는 이 지독한 불감증도 아프지만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게 무엇보다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