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시집

안직수 시인의 시집 <<대화>>

꿍이와 엄지검지 2017. 2. 27. 16:51

 

 

등산

 

 

오르다가

힘겨워 짐 내려놓고

간식 꺼내 먹으면

그곳이 정상이다.

 

 

길거리 의자

 

 

노숙자들이 누워 자는 통에

불편하다가 누군가 민원을 넣자

구청에서 벤치를 뽑아 갔다.

그 누군가도, 노숙자도

잠시 쉴 의자를 잃어버렸다.

 

그런 나라에서 나는 산다.

 

 

세월호

 

 

숨쉬기가 힘들어

오늘 나는

잔잔한 호수에 낚싯대를 던진다.

 

바람도 없는 날

이따금 물 위로 떨어지는 바늘 무게만큼

잔물살 일어난다.

 

길도, 말도, 글도

막혀 버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

찌도 걸지 않은 낚시를

호수에 던져 놓는다.

 

물 아래로 눈물이 흐른다.

 

 

행복

 

 

아이가

땀 뻘뻘 흘리며

귀이개로 귀지를 파낸다.

 

머리를 한참 뒤적이더니

족집게로

반쯤 흰 머리카락 간신히 찾아내

뽑아서 보여 준다.

 

그리곤 까르르르

어버이날 선물이란다.

 

그 머리카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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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쯤 넣었다.



- 안직수 시인의 시집 <<대화>  한강2015

 


 

시인의 시에 숙연해진다. 

평범한 가장의 평범한 일상이 평범하지 않게 폐부에 박힌다.

그런 나라에 사는 우리, 분노 없이 저렇게도 분노를 표현할 수 있구나.

행복을, 저렇게도 그릴 수가 있구나.

- 김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