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시집
윤제림 시인의 시집 <<그는 걸어서 온다>>
꿍이와 엄지검지
2017. 2. 28. 14:35
당숙은 죽어서 새가 되었다
한 소리 또 하고
또 하고.
당숙은 죽어서 산새가 되었다.
한 노래 또 하고
또 하고.
걸레스님*
걸레질 몇 번 하고 다 했다며
가방도 그냥 두고 가는 그를
아무도붙잡지 못했다
"괜히 왔다 간다."
가래침을 뱉으며
유유히 교문을 빠져나가는데
담임선생도
아무 말을 못 했다.
*중광(重光. 1935~2002)
연변처녀
내가 세상에 나오기 전의 내 어머니,
꽃가지 사이로 얼굴만 내밀고 찍은 사진 속
시집오기 전의 아내,
눈보라 고갯길을 넘어 교실로 들어서는
정순이, 순옥이 그리고
국어책 속의 영희.
연변처녀야 나는 지금
네 얼굴에서
내가 알던 모든 처녀를 본다.
연변처녀야,
아무도 주지 말아라.
네 뺨 위의 대구 사과
혹은 소사 복숭아.
큰비 그치고
해 났네.
흰 구름 둥둥 떠가네.
부안식당 아줌마
배달 가시네.
구름 이고 가시네.
윤제림 괄호 열고 1959 물결표 괄호 닫고
물결처럼, 바람처럼, 황포돛배처럼, 버들잎처럼
구름처럼, 미시령처럼, 지렁이처럼, 능구렁이처럼
독사처럼, 미꾸라지처럼, 개꼬리처럼, 닭털처럼
처녀 옷고름처럼
윤제림(1959~ )
몰년미상(沒年未詳)
- 윤제림, <<그는 걸어서 온다>> 문학동네 2012
짧은 시에 오래 머문다.
쉬운 시에 더 오래 머문다.
짧다고, 쉽다고 감동의 크기가 작으랴.
요즘 아이들은 시를 참 못 쓴다.
어려워 한다.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시 보여주면 그러지 않을 텐데.
- 김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