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시집

권오삼 시인의 동시집 <<나무들도 놀이를 한다>>

꿍이와 엄지검지 2017. 3. 1. 15:35



말로 그리는 그림.2

- 빈 페트병과 우유팩


부슬부슬

찬비 내리는

산책길 쉼터 긴 의자에

버려진 강아지처럼

쓰러져 누워 있는

빈 페트병

옆에는

빨대 물고 고양이처럼

오도카니 앉아 있는

빨간 우유 팩 하나



김치와 치즈


먹기도 하지만

사진 찍을 때도

필요하다


김치!  치즈!



지구


수억만 년에 걸쳐 만들어진 태양계의 동식물원


(이 동식물원에는 수많은 동식물이 있다.

이 중에서 가장 위험한 동물은

두 발로 걸어 다니는 털 없는 동물이다.)



기차


몸체보다 소리가 더 길다


몸체는

저만치 사라졌는데 아직도 플릿폼에 남아 있는

기적 소리



예쁘네


1

봄이 되자

여기저기서 꽃이 막 피어납니다

'예쁘네!'도 막 피어납니다


꽃이 활짝 피었스빈다

'예쁘네!'도 활짝 피었습니다


2

꽃이 시듭니다

'예쁘네!'도 시듭니다


꽃이 집니다

'예쁘네!'도 집니다


3

꽃처럼

말도 피었다가 집니다



- 권오삼, <<나무들도 놀이를 한다>>  열린어린이  2016



생소한 상황이 하나도 없다.

처음 본 단어도 없다.

그러나 누구도 건드리지 않은 숫눈에 찍힌 첫발자국처럼 신선하며

말로 그리는 그림은 살아있는것처럼 생생하다.

아무도 낚아채지 못한 순간, 죽었던 사물이 찬란하게 부활하는 순간이다.


"좋은 시가 되고 못 되고는 착상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착상이 좋으면 좋은 시가 될 수 있을 것이고, 착상이 평범하거나 상투적이면 그 시도 그러할 것"(이승주)이다.


시인의 시집은 새 봉투가 아닌, 한 번 쓴 봉투를 뒤집어 재활용해서 만든 봉투에 담겨져 내게로 왔다.

선생님은 한 번만 쓰고 버리는 봉투가 아까워 선생님께 오는 봉투는 모두 펴서 다시 접는다 하셨다.

나 역시도 아깝다, 자원 낭비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실천해본 적은 없다.


시집 말미의 시 해설 역시 <어린이와 함께 읽는 시 해설>이다.

시는 동시면서 어른을 위한 시 해설이 아마도 못마땅하셨을 것이다.

- 김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