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삼 시인의 동시집 <<나무들도 놀이를 한다>>
말로 그리는 그림.2
- 빈 페트병과 우유팩
부슬부슬
찬비 내리는
산책길 쉼터 긴 의자에
버려진 강아지처럼
쓰러져 누워 있는
빈 페트병
옆에는
빨대 물고 고양이처럼
오도카니 앉아 있는
빨간 우유 팩 하나
김치와 치즈
먹기도 하지만
사진 찍을 때도
필요하다
김치! 치즈!
지구
수억만 년에 걸쳐 만들어진 태양계의 동식물원
(이 동식물원에는 수많은 동식물이 있다.
이 중에서 가장 위험한 동물은
두 발로 걸어 다니는 털 없는 동물이다.)
기차
몸체보다 소리가 더 길다
몸체는
저만치 사라졌는데 아직도 플릿폼에 남아 있는
기적 소리
예쁘네
1
봄이 되자
여기저기서 꽃이 막 피어납니다
'예쁘네!'도 막 피어납니다
꽃이 활짝 피었스빈다
'예쁘네!'도 활짝 피었습니다
2
꽃이 시듭니다
'예쁘네!'도 시듭니다
꽃이 집니다
'예쁘네!'도 집니다
3
꽃처럼
말도 피었다가 집니다
- 권오삼, <<나무들도 놀이를 한다>> 열린어린이 2016
생소한 상황이 하나도 없다.
처음 본 단어도 없다.
그러나 누구도 건드리지 않은 숫눈에 찍힌 첫발자국처럼 신선하며
말로 그리는 그림은 살아있는것처럼 생생하다.
아무도 낚아채지 못한 순간, 죽었던 사물이 찬란하게 부활하는 순간이다.
"좋은 시가 되고 못 되고는 착상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착상이 좋으면 좋은 시가 될 수 있을 것이고, 착상이 평범하거나 상투적이면 그 시도 그러할 것"(이승주)이다.
시인의 시집은 새 봉투가 아닌, 한 번 쓴 봉투를 뒤집어 재활용해서 만든 봉투에 담겨져 내게로 왔다.
선생님은 한 번만 쓰고 버리는 봉투가 아까워 선생님께 오는 봉투는 모두 펴서 다시 접는다 하셨다.
나 역시도 아깝다, 자원 낭비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실천해본 적은 없다.
시집 말미의 시 해설 역시 <어린이와 함께 읽는 시 해설>이다.
시는 동시면서 어른을 위한 시 해설이 아마도 못마땅하셨을 것이다.
- 김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