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침의 비밀 / 김영주
이달의 심사평
사소한 일상 끌어낸 신선한 감각에 박수
그 아침의 비밀
김영주
잠이 덜 깬 새벽녘 유리컵을 닦다가
살과 살이 부딪치며 비명을 내지른다
순간을 놓아버린 손 바르르 떨고 있다
날선 살점들이 가슴에 와 박힌다
손때묻은 시간들이 거품처럼 사라진다
숨소리 귀에 환하다 빈자리만 차갑다
잃어버린 아픔은 그러모은 시간이다
시간 속에 붙들어 둔 은밀한 욕망이다
물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이 아침
버리고 못버리는 미련조차 짐이다
가벼운 아주 가벼운 비밀하나 가져갈 뿐
살면서
손바닥 위에
건져 놓은 손금 하나.
2009년 10월 중앙일보 시조백일장 장원작품
역시 결실의 계절이다. 가을산마다 단풍이 든 것처럼 응모작이 많았다. 장원은 김영주의 ‘그 아침의 비밀’이다. 화자는 새벽에 유리컵이라는 씨앗을 통해 “살과 살이 부딪치며 비명을” 지른다는 것을 발견한다. 손을 떠난 유리컵의 파편은 “가슴에 와 박히”고, 시상(詩想)이 확장되면서 지나가버린 시간을 떠올린다. 지난 시절의 잃어버린 아픔들 속 욕망과 시간은 첫째 수의 “유리컵을 닦다가”와 연결된다. 그리하여 “가벼운 비밀 하나 가져갈 뿐”인 상처의 껴안음이 “손바닥 위에” 촉촉한 기억의 물기를 남긴다. 사소한 일상을 신선한 감각으로 끌어올렸다.
서덕의 ‘담배’도 참신하다. 담배의 이미지가 별과 죽음으로 전환한다. 상상력의 힘이다. “외로운 사내는 청동 향로”가 되어 “하얀 번뇌 꽃”을 피운다. “끝머리에” 내려앉는 “붉은 별이” “희미한 잔향”으로 남는 데서 담배의 덧없음은 재구성된다. 허나 시조는 정형시인 만큼 메시지를 담는 데도 절제와 균형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차상으로 밀렸다. 차하 ‘가을 삽화’는 시상을 무리 없이 끌고 가는 추진력이 있다. 그러나 평범한 진술로 인해 참신함이 떨어지고 낯선 충격이 부족하다. 감귤나무를 ‘노란 손수건’과 ‘금빛 알’로 보거나, “오름이 봉분 같다”고 한 표현도 새롭진 않다. 좀더 분발하길 바란다. 김경숙·이상목·조미란·황삼연씨 등의 작품이 끝까지 논의됐다. 다음 작품을 기대해 본다.
<심사위원 : 박기섭·박현덕>
◆응모 안내=매달 20일 무렵까지 접수된 응모작을 심사해 그 달 말 발표합니다. 늦게 도착한 원고는 다음 달에 심사합니다. 응모 편수는 제한이 없습니다. 장원·차상·차하 당선자에겐 중앙시조백일장 연말장원전 응모 자격을 줍니다. 접수처는 서울 중구 순화동 7번지 중앙일보 편집국 문화부 중앙 시조백일장 담당자 앞(우편번호:100-7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