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시집
표문순 시인의 시집 <<공복의 구성>>
꿍이와 엄지검지
2019. 7. 23. 19:34
붉은 목장갑
어쩌면 나이기도 너이기도 했었을,
약간은 물컹거렸던 바퀴의 감각으로
오늘은 바닥만 붉은 목장갑을 목격했다
늘어진 혓바닥에 겨우 달린 숨결처럼
바퀴에 붙어 있는 들짐승의 잔털처럼
야생에 올이 풀린채 도로를 뒹굴었다
한 그릇 밥 되는 일, 목 놓고 버티는 거라고
하루씩 이어가는 너절한 일당 앞에
눈발은 대책도 없이 다독다독 덮고 있다
줄기의 감정
좌표를 잃어버린 철도변 넝쿨들이
사선蛇線에 목을 놓고 있는 힘껏 건너간다
천천히 아주 묵묵히
햇볕을 끌고 간다
덫이 된 듯 요동 없는 단단한 침목들은
왁자했던 열차의 흔들림을 함구한 채
조용히 7월로 이동하는
덩굴손을 지켜본다
노래처럼 덜컹대며 달려올 불안들
이 침묵에는 읽어야할 슬픔이 너무 많다
한 뼘씩 영역을 뻗는
감정을 읽는다
4호선
전단지 뿌러놓듯
강제로 얹어 놓은
반절짜리 결함을 무플에서 발견한다
읽어도 읽지 못하는 마음의 난독증을
소량의 적선과
다량의 무관심 사이
온종일 휘인 말이 앉았다가 스러질 뿐
좀처럼 흔들리지 않고 눈을 닫는 사람들
<<공복의 구성>> 표문순, 2019 고요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