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재, 현몽하여 하늘북(天鼓)을 울리다 / 김영주
단재, 현몽하여 하늘북(天鼓)을 울리다
김영주
나 죽어 숱한 날을 국적도 없이 떠돌다가
비로소 몸을 눕힐 땅 한 조각 얻었으나
꿈자리 뒤숭숭하여 잠시 현몽하여 본다
나라사랑 하려거든 역사부터 알라했다
내 나라 내 역사를 내 민족이 모른다면
멸시와 능욕당함은 불을 보듯 뻔한 일
본디 조선인은 그 천성이 미혹하여
어리석음을 적에 들켜 패하기를 거듭했다
싸움은 이긴 자만이 그 명분을 얻는 법
난세에도 우리에게 영웅은 있었으니
전쟁에 임하면서 편함을 구했을까
그들은 몸을 던졌고 고통 속에 살다 갔다
지상의 백성들은 배가 고파 죽어가고
천상의 벼슬아치는 배가 터져 죽는다
땅치고 통탄할 일이다 부끄럽지 않은가
나라의 흥과 망을 어깨에 메었거든
백성의 어버이로 어둠을 밝히려거든
그 한 몸 사리지 말고 초개같이 던질 일
이웃에 몸을 기대 밥 빌 생각 하지마라
스스로 나약함을 만방에 알림이니
더 이상 그릇된 역사를 되풀이할 수는 없다
있는 나라 없는 나라 눈이 흐려 팔아먹고
입술을 도려낸 뒤 잇몸에게 죄 묻는 건
유구한 역사는 있어도 빈 무덤만 지키는 일
역사를 바로 보라!
역사를 바로 알라!
내 오늘 천고를 울려 훗날을 경계하니
나라는 스스로 해친 뒤 남이 해치는 법이다!*
* 人必自侮然後人侮之 (인필자모연후인모지)
國必自伐而後人伐之 (국필자벌이후인벌지)
사람은 스스로 업신여긴 뒤에야 남에게서 모욕을 당하고,
나라도 스스로 해친 뒤에야 남의 손에 망하게 된다. <孟子>
*시대를 불문하고 나라에 해악을 가하는 자는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안에 있다는 사실. 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