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시집

손예화 시인의 시집 <<귀를 여는 시간들>>

꿍이와 엄지검지 2020. 2. 25. 17:48





노을


손예화


황량한 들판 속

등 굽은 놀을 봐라

점점이 짙어가는 치매의 흔적들로

어머니 부르는 소리

빈들

느릿

지나간다




귀를 여는 시간들


손예화


고향집 앞뜰에다 바지랑대 세워두고

어머니 굽은 허리로 거울같이 훔쳐내던

드넓은 푸른 하늘에

언제 저리 너셨나


둘레마저 환하게 에도는 이불 호청

몇 번이나 물을 적셔 우린 속내 세웠을까

괜찮다 나는 괜찮아

귀 기울였을 빈 가슴


이제 그만 그 손을 놓으려 한다는데

해거름 어둑어둑 동백꽃 떨어지니

꽃향기 여미는 가슴

그 안에 계시네


서녘 길 눈물 같은 딸이라 탓하셔도

싸리문 탱자 꽃이 소리 없이 질까봐

오늘은 따뜻한 품속 머물다 가고 싶다




백야白夜

- 탈린 실야라인 크루즈 갑판에서


손예화


자정을 넘어서도

저 둥글고 환한 세계


밀물처럼 다가간다, 만다라 저 만다라


맑은 빛 그윽이 비춰

하늘길이 수줍다



<<귀를 여는 시간들>>  고요아침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