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시집

홍성란 시인의 시집 <명자꽃>

꿍이와 엄지검지 2020. 4. 8. 14:45



애기메꽃


홍성란


한 때 세상은

날 위해 도는 줄 알았지


날 위해 돌돌 감아 오르는 줄 알았지


들길에

쪼그려 앉은 분홍치마 계집애




판막


홍성란


내 안의 시퍼런 심장판막을 보았다

숨 꾹 죽이고 있어도 가느다란 두 팔을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펄떡펄떡 뛰었다


어미 떨어져 혼자 노는 살림집 강아지나

몸집에게 버림받은 애처로운 내 판막이나

가만히 들여다보니 눈물인 건 한가지


발자국 소리 나면 미끄러져라 달려나와

이토록 외로웠다고 몸서리치며 핥을 데 없는

내 마음 건지고 싶은 슬픔이 마알갛게 맺혔다




  따뜻한 슬픔


  홍성란


  너를 사랑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차마, 사랑은 여윈 네 얼굴 바라보다 일어서는 것 묻

고 싶은 맘 접어두는 것 말 못하고 돌아서는 것

  하필, 동짓밤 빈 가지 사이 어둠별에서 손톱달에서

가슴 저리게 너를 보는 것

  문득, 삿갓등 아래 함박눈 오는 밤 창문 활짝 열고

서서 그립다 네가 그립다 눈에게만 고하는 것

  끝내, 사랑한다는 말 따윈 끝끝내 참아내는 것


  숫눈길

  따뜻한 슬픔이

  딛고 오던

  그 저녁



 <<명자꽃>>  서정시학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