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 김영주 (정용국 시인의 리뷰 <<좋은시조>> 계간평)
지구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이래로 불공정의 역사는 필연이었다. 우선 인간은 자신의 목숨과 편리를 위하여 자연을 훼손해야 했고 또한 인간들 사이에서도 경쟁으로 인해 발생하게 된 다툼은 그 역사가 깊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영원히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생즉시고(生卽是苦)라는 등짐은 생명체가 삶을 마감하는 날까지 걸머지고 가야 하는 숙명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간은 이 길고 험난한 도정에서도 위대한 문명과 예술을 이루었다.
이는 삶을 단지 고해라고 쉽게 치부하지 않았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 결국 인간이 창조한 문명과 예술은 어쩌면 삶의 걸림돌들을 이겨내기 위한 끝없는 도전이었으며 새로운 감정의 분출구 역할을 해왔다고 보여진다. 엄혹한 현샐에서도 시인들은 고통의 심저로 내려가 슬픔과 고뇌의 속살을 어루만지고 위무하며 용기와 배려로 이들을 이끌어낸다.
(중략)
다음은 김영주 시인의 어머니가 들려주는 역설의 말씀을 들어보자.
기울어진 마당에는 발 들이지 말라는
때와 운 혹은 연줄에 목을 바짝 매라는
그리고 그 무엇보다 착하게 살지 말라는
의리니 인정이니 구차하지 말라는
움직이는 섭리는 사랑만이 아니라는
그러니 그 어디에도 마음 주지 말라는
휘어지든 물이 들든 부러지진 말라는
한번 쓰인 연장이면 버려질 줄 알라는
그래서 그 어떤 것보다 인간이 무섭다는
-김영주 [공부] <<시조21>> 가을호
한때 대명천지라는 말이 유행한 시절이 있었다. 계급사회가 붕괴되고 민주주의가 우리 곁에 들어오면서 불합리한 일이나 사회제도에 반하는 일이 생겼을 때 ‘아니 대명천지에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라며 목청을 높이곤 했다. 그러나 대명천지에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은 부지기수이며 수많은 법이 있어도 해결할 수 없는 억울하고 불합리한 일들은 언제나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험하고 냉정한 세상에서 자식을 기르는 어머니는 “의리”와 “인정”과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잘 알면서도 자식에게는 경계하라고 타이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바르고 정의로운 길’을 간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힘든 것인지 걸어온 세상을 뒤돌아보면서 체득했기 때문이다.
“말라는”이라는 부정한 구절마다 어머니의 간담이 오그라드는 섬뜩한 심사가 서려 있고 “인간이 무섭다는” 마무리에는 역설을 통한 간곡한 당부가 똬리를 틀고 앉아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그러니 그 어디에도”, “그래서 그 어떤 것보다”로 전개되는 종장의 첫 구절은 소상하고 세세하게 삶의 고단함을 풀어서 들려주고 있다. 이렇게 가슴도 펴지 못하고 자란 자식들이 그래도 민주화의 횃불과 정의 촛불을 들고 세상을 밝혔으니 노심초사한 어머니의 역설도 대단한 힘을 발휘한 셈이다.
<<좋은시조>> 2020 겨울호 계간평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