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연시조
홍어 / 김영주
꿍이와 엄지검지
2021. 6. 3. 11:08
홍어
김영주
마트에서 장 봐온 칠레산 삭힌 홍어에
지평에서 왔다는 생막걸리 한 병 놓고
깔깔한 입맛 다시며 저녁상을 차린다
이게 좀 덜 삭았나? 톡 쏘는 맛이 없네
괜찮게 삭았는데? 맛있기만 하구먼
두 귀는 듣는 둥 마는 둥 젓가락만 바쁘다
내가 아는 저 남자가 홍어를 좋아했는지
나랑 사는 저 여자가 홍어를 다 먹었는지
가위로 오려놓은 듯 서로의 틈 낯설다
껍질 벗겨 포 떠진 쿰쿰한 살점들이
온 집안의 적막을 녹녹하게 헤집는데
라디오 저녁방송은 저 혼자 재미지다
보일 거 다 보이고
궁금할 거 하나 없는
결혼이란 명분으로 쌓아온 치적이란
잘 삭은 저 홍어처럼 혀에 착 감기는 일
아이들 내보내고 둘만 남은 밥상 앞
희끗해진 머리칼로 늙음을 다투면서
두 사람 우정 한 접시 말없이 비워간다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21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