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박형준
그 젊은이는 맨방바닥에서 잠을 잤다
창문으로 사과나무의 꼭대기만 보였다
가을에 간신히 작은 열매가 맺혔다
그 젊은이에게 그렇게 사랑이 찾아왔다
그녀가 지나가는 말로 허리가 아프다고 했다
그는 그때까지 맨방바닥에서 사랑을 나눴다
지하 방의 창문으로 때 이른 낙과가 지나갔다
하지만 그 젊은이는 여자를 기다렸다
그녀의 옷에 묻은 찬 냄새를 기억하며
그 젊은이는 가을밤에 맨방바닥에서 잤다
서리가 입속에서 부서지는 날들이 지나갔다
창틀에 낙과가 쌓인 어느 날
물론 그 여자가 왔다 그 젊은이는 그때까지
사두고 한 번도 깔지 않은 요를 깔았다
지하 방을 가득 채우는 요의 끝을 만지며
그 젊은이는 천진하게 여자에게 웃었다
맨방바닥에 꽃무늬 요가 펴졌다 생생한 요의 그림자가
여자는 그 젊은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과나무의 꼭대기,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문학과지성사
'♡♡♡ > 시인의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손금을 바꾼 날 / 한분순 (0) | 2012.10.21 |
---|---|
토르소 / 이장욱 (0) | 2012.03.26 |
무엇이 성공인가 / 랠프 왈도 애머슨 (0) | 2012.01.09 |
버섯장국 / 서정택 (0) | 2011.10.10 |
길 - 밭에 가서 다시 일어서기 1 / 김준태 (0) | 2011.10.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