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시 153

손증호 시인의 <화상전화> / 김영주

꼼짝마라, 독자! 손증호 시인의 김영주 뜨겁다, 그놈의 전화 날것으로 와 닿는 축지법이 별거냐며 불쑥불쑥 들이대는 그 앞엔 숨을 곳 없다 꼼짝 마라, 손 증 호 - 손증호, 전문, 시집 에서 시시때때로 오는 전화, 얼굴이 보이지 않아도 옷매무새를 고치게 되는 게 본능인데 화상전화라니. 입은 채로, 자다 깨서, 혼밥 · 혼술을 먹다가, 혹은 민망한 장소에서 민망한 자세로 맞닥뜨릴 수도 있는 상황이다. 공개하고 싶지 않은 은밀한 회동이라도 하는 찰나라 치면 이건 뭐 오도 가도 못할 "딱걸렸어"다. 거기다 화면발이라도 잘 받으면 모르겠는데 액정에 뜬 내 얼굴은 나이보다 훨씬 늙고 추레한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무방비상태의 "내 얼굴"이 확실해서 더욱 당혹스럽다. 전화번호 검색을 하다가 내 쪽에서 난데없이 영상통..

이명숙 시인의 <아홉수>

아홉수 이명숙 아홉에서 열 사이 다리 없는 강이 있다 노을을 양분하고 사이를 염탐하고 섭섭한 별들의 근처 달무리 진 아우성은 새벽과 아침 사이 해산하는 하늘이다 확 번 꽃 자백하고 다 진 꽃 화장하고 예감만 흐드러지게 빈티지한 이 침묵은 그믐과 초승 사이 광장의 촛불이다 꽃 유골 듣는 자리 다시 초록이라고 그것은 마지막 한 잎 연호하는 무반주 노래 정드리문학 제8집 다층 2020

성국희 시인의 <낙동강>

낙동강 성국희 차라리 그대에게 푹 빠질 걸 그랬다 가까이 다가서도 그 깊이 알 수 없어 함부로 읽지 못한 책, 드낡은 고전이었다 된바람 고개 숙여 그대 안에 길을 찾고 반달도 내려와서 삶의 얼룩 헹구는데 나는 왜 그대 밖에서 모래성만 쌓았던가 역사의 뒤란에서 몰래 울던 속울음과 나룻배에 실어 나른 가난한 노랫소리, 넘기는 책장 속으로 꿈길 다시 열어간다 목언예원 2020

문순자 시인의 <봄날의 교집합>

봄날의 교집합 문순자 어린 봄 햇살 몇 줌 어찌 그냥 흘리랴 겨우내 눅눅해진 이불 홑청 가는 사이 일곱 살 벌테 손자가 반짇고릴 엎질렀다 저건 전리품이다 시집올 때 딸려온 쪽가위 골무 단추 남편의 첫 월급봉투 덩달아 마른 탯줄도 불쑥 튀어나온다 벼락 맞은 대추나무 도장이나 만들까 세상에 남길 거라곤 하나뿐인 탯줄도장 아들놈 첫울음 같은 연두로 꾹 찍고 싶다 황금알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