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1070

김영주의 손잡이 <이광 시인의 단시조 산책 >

손잡이 김영주 아끼던 손가방이 손잡이만 다 해졌다 내 살과 너의 살이 부대끼며 사는 동안 내민 손 받아주는 일 그 아픔을 몰랐다니 김영주 시인의 를 읽는다. 사물을 대하는 눈은 두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하나는 육안이고, 또 하나는 심안이다. 시인이 아끼던 손가방이 있다. 잘 간수했다가 차림새 갖춘 외출에 동반하는 가방 같은데 그 손잡이가 다 해졌으니 꽤 오랜 시간을 함께했을 것이다. 하루아침에 해진 게 아니라 서서히 닳아 가는 모습을 시인은 그러려니 하고 보아오다가 어느 날 문득 마음에 걸리면서 한 편의 시가 탄생한다. 즉 육안에서 심안으로 연결이 된 것이다. 그동안 무심히 보고 넘겼던 손잡이의 아픔이 심안을 통해 전달되면서 가방은 ‘내 살과 너의 살이 부대끼며 사는 동안 // 내민 손 잡아주는’ ..

♡♡♡/리뷰 2022.06.17

뉘엿뉘엿 / 김영주 시 / 김현성 작곡

뉘엿뉘엿/김영주시/김현성곡 뉘엿뉘엿 김영주 머리 하얀 할머니와 머리 하얀 아들이 앙상하게 마른 손을 놓칠까 꼬옥 잡고 소풍 온 아이들처럼 전동차에 오릅니다 머리 하얀 할머니 경로석에 앉더니 머리 하얀 아들 손을 살포시 당기면서 옆자리 비어 있다고 "여 앉아, 앉아" 합니다 함께 늙어 가는 건 부부만은 아닌 듯 잇몸뿐인 어머니도 눈 어두운 아들도 오래된 길동무처럼 뉘엿뉘엿 갑니다

마중물 / 김영주

마중물 김영주 내 피는 야성의 피 고요하나 뜨거운 저 거친 돌풍에도 근성을 잃지 않는 꺼질 듯 꺼질 수 없는 한限 같은 혼입니다 주체 못 할 이 열정 당신에게 바칩니다 창백한 그 얼굴에 화색이 돌아오면 멈췄던 심장을 깨워 펌프질을 합니다 목마른 당신에게 내 전부를 쏟아붓고 갈증이 해소되면 간단히 잊혀지는 당신을 마중하는 일 . . . 스러지는 일입니다 2022년 5-6월호

학교라는 딴 세계 / 김영주

학교라는 딴 세계 김영주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다가 딱 걸렸다 - 그래, 경준이는 손가락에 밴드 붙인 중환자고 나머지 한 놈, 두 놈, 세 놈… 니들은 뭐냐? 동남이, 현우, 상민이, 명길이, 진호, 태준이 환자 하나에 도우미 여섯 사연도 구구절절이다 엘리베이터 그 까짓게 뭐라고 그거 한번 타 보겠다고 비굴이 굴비굴비 엮인다 2022 봄호

♡♡/발표동시 2022.05.15

이방인 / 김영주

이방인 김영주 코로나로 갇혔다가 오랜만에 전철을 탄다 습관처럼 가던 길도 물어봐야 할 것 같아 “이쪽이 서울행 맞죠?” 돌다리를 두들긴다 대답을 할 듯 말 듯 우물쭈물 저 청년 “써우요? 네 맞아요, 여기 써우 맞아요.” 오 이런, 마스크 속에서 외국인 낯선 억양 호다닥 돌아서며 실소를 터뜨린다 난감한 내 표정은 마스크가 살렸을까 어쩌다 외국인에게 길을 다 묻고 살까 제16호 2022 연간지

길의 말씀 / 김영주

길의 말씀 김영주 내 앞에 놓인 길만 길이라 생각했다 타는 목을 견디면서 걸어, 걸어, 가는 길 길 끝엔 두드릴 문이 보일 것만 같았다 돌부리에 엎어졌다 수렁에도 빠졌다 길이 사라졌다 길이 벌떡 일어섰다 쓰러진 나무 등걸이 내 발목을 낚아챘다 불현듯 돌아보니 따라오는 길 있었다 내 뒤를 밟은 길은 나와 함께 걸어준 길 나에게 뒤돌아보는 법 걸어온 길이 일러준다 2022 봄호

시판돈 / 김영주

시판돈* 김영주 그럴 수도 있겠다 시에 판돈 거는 일 나, 시인이오 해봤자 대접도 못 받는데 명함에 시인 프로필 하나쯤 넣고 싶어 군화소리 다급던 시절 울분을 터뜨리다 한 쪽 발을 빼앗긴 시인이 생각난다 밟히고 걷어채여도 시인이라! 외쳤다는 오늘은 시 한 편을 오만 원에 팔았다 원고료 오만 원에 부자가 된 것 같아 시 판 돈 오만 원으로 교만해지고 싶은 날 시판돈*은 못가도 시 판 돈에 뿌듯해져 무주공산 허공에 대고 허세를 부려본다 어머니, 저 시 판 돈으로 꿈은 안 굶고 살아요 * 라오스의 여행지, 4천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6호 2022 연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