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넵! / 김영주

넵 김영주 수면은 무얼 믿고 저리도 견고한가 저 넓은 강폭 위를 안한자적 떠다니는 한 무리 외로운 백조 물밑이 더 분주하다 이 시대의 아들딸들 어법이 짜안하다 설정인 듯 시류인 듯 담백하게 내뱉지만 넵! 하는 결기어린 구호에 을의 설움 들어있다 온기를 말아먹는 비정한 비읍받침 '네'로는 미진하고 '예'하려니 허기져서 읍! 하고 닫아거는 빗장 만감이 측은하다 *직장인들이 상사의 부름이나 지시에 '넵'으로 대답하게되는 증상의 '넵병'이 등장했다. 전문가들은 '넵, 넵! 넵~ 네엡...' 등 직장인의 정신적 고충을 수십가지로 분석하고 있다. 2021 연간집

김문억 선생님이 읽어주신 김영주의 <젖>

젖 김영주 대형마트 냉장코너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우유와 요구르트 치즈와 크림 버터 저 많은 유제품들은 어느 몸에서 나왔을까 처음엔 몰랐었다 알면서도 아니, 몰랐다 새끼 가진 어미만이 젖을 낼수 있다는 것을 죄 없이 스러져가는 송아지 보고 알았다 젖 물려본 어미는 안다 뭉클한 복받침을 찌르르 젖이 돌 때 눈물도 펑 도는 것을 어미소 큰 눈망울에 눈물 그렁 고였을 것을 ------------------------------------ 오늘 아침 배달된 시조시학 여름호에 올라있는 김영주의 작품이다 젖 이라고 하는 제목부터 조금은 파격적이다 그래서 좋다 내가 이 작품을 읽고 감동하여 눈여겨 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무엇보다 구체적인 소설이 선명하면서 시종일관 사랑이라고 하는 주제가 따듯한 작품이다 시 독자들..

공부 / 김영주 (정용국 시인의 리뷰 <<좋은시조>> 계간평)

지구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이래로 불공정의 역사는 필연이었다. 우선 인간은 자신의 목숨과 편리를 위하여 자연을 훼손해야 했고 또한 인간들 사이에서도 경쟁으로 인해 발생하게 된 다툼은 그 역사가 깊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영원히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생즉시고(生卽是苦)라는 등짐은 생명체가 삶을 마감하는 날까지 걸머지고 가야 하는 숙명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간은 이 길고 험난한 도정에서도 위대한 문명과 예술을 이루었다. 이는 삶을 단지 고해라고 쉽게 치부하지 않았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 결국 인간이 창조한 문명과 예술은 어쩌면 삶의 걸림돌들을 이겨내기 위한 끝없는 도전이었으며 새로운 감정의 분출구 역할을 해왔다고 보여진다. 엄혹한 현샐에서도 시인들은 고통의 심저로 내려가 슬픔과 고뇌의 속..

코마 / 김영주

코마 김영주 정지버튼 눌렀어도 끄덕끄덕 돌아가는 선풍기 모터소리 아무래도 심상찮다 드르륵 털털터덜털 드르르륵 턱터덜 십오 년을 돌렸으니 미련 따위 없을 텐데 수명을 다하고도 죽지 못해 살아야하는 그 무슨 가당치않은 역리의 항변 같다 코드를 뽑아야만 멈추는 기계처럼 미음줄 코에 꽂고 또 하루를 연명하는 모진 건 목슴이라는 이 엄연한 슬픔 2020 가을호

부록 / 김영주

부록 김영주 인테리어 잡지 한 권 오랜만에 주문했다 특별호 답례라고 부록이 붙었는데 그것참 기암할 만한 깜짝 선물이 따라왔다 보통은 수첩이나 엽서를 보내주고 가끔은 볼펜이나 명언집이 오는데 그렇게 재미없는 건 받아도 그저 그런데 어머나! 이게 뭐람 꽃분홍 팬티라니 살다가 살다가 원, 이런 센스를 봤나 옆에서 누가 보든 말든 '좋아! 좋아! 아주 좋아!" 2020 가을호 신작특집

새끼 / 김영주

새끼 김영주 인간사 그리하여 공평하다 하나보다 낳고 품고 길러낸 일 생각하면 애잔한데 어쩌다 이 착한 것들이 내 속에서 나왔을까 짜증도 귀찮증도 한번쯤은 날 법한데 열 번을 물어보면 열 번 다 순한 낯이다 가진 게 더 많았으면 이런 복을 누릴까 "저녁에 뭐 먹고싶어?" 카톡을 보내놓고 부쩍 는 흰 머리에 염색약을 바르다가 너희들 두고 갈 일이 미안해서 목이 멘다 2020 가을호 신작특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