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시집 60

이나영 시인의 시집 <<언제나 스탠바이>>

비상구 탱고 이나영 물걸레 빨아 널고 고무장갑 벗어내고 비상구 계단에서 빵 한 쪽 뜯고 난 뒤 화장실 한쪽 구석에 밴 땀을 말린다 보이지 말란 말에 갑갑한 숨을 잡고 환경도 미화도 없는 지하로 내몰리고 참았던 마음 쏟듯이 쓰레기통 비워낸다 반도네온 리듬으로 저들의 목청 속에 거친 숨 몰아가며 오랫동안 춤을 춘다 악센트 발끝에 실어 찌든 날 걷어찬다 책만드는집 2020

김나비 시인의 시집 <<혼인비행>>

로봇청소기 김나비 예약된 또 하루가 조용히 눈을 뜬다 친구가 없는 나는 은둔형 외톨이 사람들 떠난 냄새가 마르기를 기다린다 간단한 질문에는 표정 없이 답을 하고 사지를 웅크린 채 어제를 찾아가며 먹어도 자라지 않는 바코드를 읽는다 분주한 발소리가 문밖에 흩어지면 내 속에 숨긴 나를 찾을 수 있을까 남들은 내 머릿 속을 먼지 통에 빗댄다 혼놀*은 내 운명에 새겨진 검은 지도 익숙한 외로움이 틀 안에 맴을 돌 때 재빨리 몸을 숨기고 충전대로 향한다 *혼잣 놂, 또는 그렇게 하는 놀이 발견 2020

이용식 시인의 시집 <<우포늪 가시연꽃>>

휴대전화 문자 이용식 전화 오면 깜작 놀라 문자 보기 겁이 난다 왜들 연락 없이 갑자기 떠나는지 이왕에 떠나가려면 우정마저 거둬주오 전화해도 받지 않아 하고픈 말 놓쳐버린 당연히 만나리라 믿었는데 허망하다 다음 생 혹 만나시면 알은체나 해 주오 이슬방울 이용식 하루는 길고 길어도 일 년은 잠깐이다 시작이 곧 끝인 것을 슬어지는 이슬을 본다 풀잎이 목을 적신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나 토방 2020

이남순 시인의 시집 <<봄은 평등한가>>

웃골댁 양파농사 이남순 천 평 남짓 남새밭을 산 채로 갈아엎자 들녘을 덮어오는 울음 끝이 싸아하다 모종값 포기하고도 품삯조차 못 건지니 풍년이 죄라더라, 죄명 한번 얼척없다 못 거둔 가슴팍에 순장시킨 내 새끼들 땀흘려 가꾼 농사가 꼼짝없는 벌(罰)이라니 뉘 눈물 나 몰라라 냉랭한 뉴스 앞에 아무일 없는 듯이 하루가 저무는데 노을만 피멍 든 얼굴 하늘 끝에 부빈다 씨종자 이남순 지 엄니를 쥐 잡듯이 했다네요 돈 달라고, 오메는 좋겠네요, 그럴 아들 없으니깐 뭔 말을? 두들겨 맞더라도 씨종자는 있어야제 문학의 전당 2020

고성만 시인의 <<파란 . 만장>> 고요아침

개 고성만 소리조차 가는 비 가슴 적신 봄날 아침 팔짝팔짝 검둥개 밥그릇 채우면서 너 어찌 내 속을 알랴 중얼중얼 어머니 포클레인 고성만 붉은 바퀴 자국을 새기며 달려간다 피는 차고 거친 호흡 망설임도 후회 없이 스스로 길을 만들어 표표히 떠나는 그 공사장 뒤 모퉁이 서럽게 울면서 한 숟갈 한 숟갈 떠서 담는 밥그릇 목숨이 부대낄 때면 기어서 다가간다 고요아침 2020

유선철 시인의 시집 <<찔레꽃 만다라>>

빙어의 설법 유선철 너희가 나를 먹느냐 산 채로 씹어먹느냐 은하처럼 푸른 물에 빙하보다 맑은 생각 너희가 나를 먹느냐 씻지 못할 죄를 먹느냐 단풍 죽이기 유선철 직지사 관음전 앞 난데없는 소란이다 앙큼시런 빨간 장갑 이년이 범인아이가 노란치마 팔 랑거리는 저년도 공범인기라 시님요, 저짜로 가이소 야들 땜에 눈 배리겠심더 참말로 같짢데이 여어가 어데라고 작 년에도 심하디만 올핸 더 지랄이네 시님요, 불싸질러뿌까 요 버리장머리 확 뜯어고치게 노보살 고함소리에 산도 절도 어리둥절 찔레꽃 만다라 2020

이용식 시인의 시집 <<우포늪 가시연꽃>>

휴대전화 문자 이용식 전화 오면 깜작 놀라 문자 보기 겁이 난다 왜들 연락 없이 갑자기 떠나는지 이왕에 떠나가려면 우정마저 거둬주오 전화해도 받지 않아 하고픈 말 놓쳐버린 당연히 만나리라 믿었는데 허망하다 다음 생 혹 만나시면 알은체나 해 주오 이슬방울 이용식 하루는 길고 길어도 일 년은 잠깐이다 시작이 곧 끝인 것을 슬어지는 이슬을 본다 풀잎이 목을 적신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나 토방 2020

이남순 시인의 시집 <<봄은 평등한가>>

웃골댁 양파농사 이남순 천 평 남짓 남새밭을 산 채로 갈아엎자 들녘을 덮어오는 울음 끝이 싸아하다 모종값 포기하고도 품삯조차 못 건지니 풍년이 죄라더라, 죄명 한번 얼척없다 못 거둔 가슴팍에 순장시킨 내 새끼들 땀흘려 가꾼 농사가 꼼짝없는 벌(罰)이라니 뉘 눈물 나 몰라라 냉랭한 뉴스 앞에 아무일 없는 듯이 하루가 저무는데 노을만 피멍 든 얼굴 하늘 끝에 부빈다 씨종자 이남순 지 엄니를 쥐 잡듯이 했다네요 돈 달라고, 오메는 좋겠네요, 그럴 아들 없으니깐 뭔 말을? 두들겨 맞더라도 씨종자는 있어야제 문학의 전당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