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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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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컴퓨터를 내보냈다. 용기가 필요했지만 도서검색용 컴퓨터 두 대만 남겨놓고 애물단지로 전락한 정보검색용 컴퓨터 네 대는 수리해서 쓰도록 필요한 부서로 넘겼다. 컴퓨터를 해체하면서 구석구석 감춰놓은 아이스크림 막대기, 과자봉지 구겨진 A4용지 등 쓰레기도 함께 딸려 나왔다. 일 년 전 모둠학습 코너의 컴퓨터를 내보낼 때에도 반발이 심하면 어떡하나 하는 많은 걱정이 앞섰으나 순기능보다는 역기능 쪽의 부등호가 더 열렸다. 도서관 협력수업 등, 도서관 시설물을 이용해야 하는 수업은 준비로 인한 시간 부담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형국이어서 활용도가 매우 떨어진다는 이유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런데 막상 치우고 나니 아쉬워하는 아이들보다 좋아하는 아이들이 더 많았다. 그 아이들 말로는 점심시간에 조용히 와서 자기 시간을 갖고 싶어도 컴퓨터 주변의 아이들이 내는 소음으로 도서관에 오기 싫었다는 것이다. 그 말에 힘을 얻어 나머지 네 대의 컴퓨터를 내보내기 위한 탐색의 시간을 일 년 보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도서관에 컴퓨터가 있을 때는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이면 서로 컴퓨터를 차지하겠다고 복도에서부터 달려와 북새통을 이루었다. 그렇게 차지한 컴퓨터는 최근의 아이돌 그룹의 신상명세와 유행 게임, 만화 등을 탐색하기에 컴퓨터가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계속 이어 보아야 하니 아무리 보안프로그램을 깔아놓고 비번을 걸어 놓아도 저희들끼리만 아는 비번을 걸어 자리를 독차지하였다. 그 컴퓨터 주변에는 여러 명의 아이들이 스크럼을 짜고 화면에 얼굴을 묻은 채 킥킥거리고 있었으니, 매달려 단속을 해도 그 때뿐, 좀처럼 도서관 분위기는 나아지지가 않았다. 그 시각, 데스크에서는 도서 대출·반납을 받아야 했고, 책의 위치를 묻는 아이들에게 책을 찾아 주어야 했으며, ‘복사가 안 돼요, 인쇄 키 좀 눌러 주세요, 학생증 분실 했어요, 신청해 주세요’ 등등의 요구로 분주했다. 순차적으로 다가오는 일이 아닌 모든 일이 한꺼번에 몰려드는 도서관 일의 특성이라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도서관 수업이 있었던 날이란. 이런 상황이니 도서관에서의 '정숙'은 먼 옛날 이야기가 되어 버렸고, 이를 우려하며 보는 선생님들에게 “요즘 도서관은 다용도실이라 다 그래요, 선생님들이 이해하세요”라고 상황을 둘러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상태가 계속 되는 것은 일하는 나나, 선의의 이용자에게 불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와중에도 컴퓨터는 곧잘 파업을 일으켜 자주 의사가 왕진을 와야 했으니 거기에 따른 번거로움과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어쨌든 컴퓨터를 내보내고 그 자리에 책상 여섯 개를 들여놓았다. 열람석이 36석 확보된 것이다. 한 반 아이들이 와서 수업을 할 수 있는 정도이다. 저 열람석이 잘 활용이 될까 염려하였는데, “수업시간에 책을 읽히러 아이들을 데리고 와도 좋으냐”는 선생님들의 나날이 늘었다. 점심시간이면 시끄러운 교실을 피해 오는 아이들로 도서관 좌석이 꽉 채워진다. 책상을 들여놓지 않았다면 바라볼 수 없는 흐뭇한 광경이다. 책을 빼서 읽고 지나간 자리는 태풍이 휩쓸고 간 자리가 되어 뒷정리는 난감해졌지만 컴퓨터의 바르지 않은 사용으로 인해 도서관의 본분을 상실했던 것에 비하면 비할 바 아니게 기분이 좋다.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는 두 대의 도서검색용 컴퓨터가 대신한다. 어차피 도서검색도 로그인을 해야만 검색이 되므로 쉬는 시간 그 짧은 동안에 아이들이 로그인이란 복잡한 절차를 거치느니 아예 도서검색을 내 컴퓨터에서 도와주고 있다. 요즘은 컴퓨터를 치워줘 고맙다고 하는 아이들이 더 많다. 컴퓨터가 있으면 자연히 책보다는 그 쪽으로 손이 가게 되고, 그러면 필요한 것만 찾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유혹의 손길이 많이 뻗쳐 온다고. 그리고 그 유혹은 너무도 손쉽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이라서 하나하나 클릭해 가다 보면 어느새 자신도 모르는 곳까지 가 있다고. 요는, 가정에서도 “엄마가 인터넷을 끊어 줘서 속 편해요”라고 하는 아이들이 많았다는 것에 내가 힘을 얻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 걸 보면 아이들이 더 지혜롭다는 생각을 한다. 아이들에게 좋을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고 손바닥에 뭐든지 놓아 주고 싶어 하는 어른들이 오히려 문제가 아닌가 싶다. 말이 나온 김에 IT강국, 전 국민 컴퓨터 보급률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좋은 기계를 옳게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숙제도 인터넷 조사해 출력해오는 숙제는 내주지 말았으면 좋겠다. 아이들 눈 건강도 나빠졌다. 손 글씨도 엉망이다. 사전은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컴퓨터에서 남의 지식이나 수집하려 한다. 컴퓨터도 따지고 보면 그냥 편리한 전자제품일 뿐인데 전자제품을 두고 대한민국 국민처럼 열광하고 몰입하는 나라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끔 한다. 그러니 늘 새것을 좋아하고 쓰던 것을 쉽게 버리는 몹쓸 습관도 갖게 되지 않았을까. 2000년 학교도서관 살리기 운동과 함께 정보화도서관이 보급되면서 학교마다 70년대의 초가지붕 개량하듯 도서관 리모델링 공사가 시작되었다. 그 때 좁은 공간에 다양한 기능을 겸비한 학교도서관을 만들다보니 열람실 안에 컴퓨터가 들어오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마치 이것이 학교도서관의 표준이라도 되는 양 롤 모델이 되지 않았나 싶다. 뭐든지 다기능을 추구하다보면 본질은 멀어지니 단순기능만 못 하게 되어 있다. 더구나 지금처럼 아이들에겐 입시위주의 교육을 시킬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개선하지 않고서는. 요즘은 지역마다 도서관이 많이 보급되어 있어 필요한 기능은 가까운 공공도서관을 찾아도 될 것이다. 야간자율학습도 사라지는 추세겠다, 공중질서도 익힐 겸 가족들과 공공도서관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즐기는 것도 좋겠다. 학교마다 모든 시설을 다 갖추려고 한다면 예산 운용도 만만치는 않을 것이며 관리는 또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지속적인 유지 보수를 요하는 자원은 지역을 대표하는 공공도서관에 중점 지원하고 학교도서관에서는 '책'에 집중하였으면 좋겠다. 이용자에게 적당한 책을 권해주는 것도 사서의 중요한 역할 중에 하나인데, 솔직히 '책 읽어내는 일'도 사서의 일이라는 것을 알아주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컴퓨터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꼭 도서관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닐 것이다. 생활하는 데 필요한 것이고, 학습하는 데 필요한 것이니 컴퓨터실의 시설을 보완해서 정보검색은 물론 입시원서업무 등 시설을 일원화 해 활용할 수 있도록 해주면 좋겠다. 도서관을 한문으로 써놓았더니 한 아이가 圖(도)자가 컴퓨터 '컴'자냐고 해서 웃었다. 옛 것이 자꾸 그리워져 그러는지,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공부방에 컴퓨터는 ‘아니올시다’다. 특히 유혹에 약한 청소년기의 아이들에겐. 열람실의 컴퓨터로 골치 아픈 사서 선생님들에게는 열람실과 컴퓨터를 분리해 보길 권한다. 그러고 보니 圖자가 컴퓨터처럼 생기긴 했네.
학교도서관 사서. 시조집『미안하다, 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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