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음악과 그림이 어우러진 시골역장의
‘작은 음악회’이야기
2014년 4월 12일, 비구름도 잠시 쉬어가던 토요일 오후, 경부선 황간역의 열여섯 번 째 작은 음악회.
그날은 특별한 손님을 주빈으로 모시고 동네가 들썩들썩할 정도로 흥겨운 잔치마당이 벌어졌다.
- 역 철로변에 자리 차지하고 앉은 시화 옹기와 항아리 -
백수 정완영 시인과 함께 한 <황간역 작은 음악회>는 결코 작지 않았다. 시골역장의 말대로 멍석만 깔아놓고 벌인 공연인데
백수 선생님을 모신다는 연락을 받고 전국에서 재능기부천사들이 단걸음에 달려와 주었다.
선생님 앞에 재롱잔치 한번 제대로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에 백수 선생님을 존경하는 ‘끼’좀 있다는 사람들은 다 모여
백수 선생님은 물론 공연을 보러온 지역주민들을 고향역이라는 추억의 장소에서 봄비대신, 촉촉한 행복에 젖게 해 준 시간이었다.
- 역 앞마당에는 시심을 넘치게 품은 항아리가 여행객을 맞고 있다 -
황간역에는 오늘도 시골 간이역을 지키는 강병규 시골역장이 있다.
길을 떠나는 사람에게, 혹은 길을 떠나고픈 사람에게 '간이역'이라는 말처럼 정겹고 따스한 위안의 장소가 또 있을까.
누구든 보듬어줄 것 같은, 늘 양지바를 것 같은, 육교가 아닌 낮은 건널목으로 건너가야 하는,
이별의 눈물은 손수건 대신 돌아서서 훌쩍거려야 할 것 같은.
- 오래전부터 <열린 음악회>의 황수정 컨셉으로 음악회를 시작하고 싶었다고 말문을 여는 강병규 황간 역장님 -
황간역을 이용하는 마을주민은 물론, 시골역장에게 황간역은 중요한 교통수단이기도 하지만
마을의 대소사, 희로애락을 나누는 마을회관 같은 곳이다.
시골역장에게는 긍지요, 자랑거리인 황간역. 늘 닦고 다듬는 역 주변은 역장집 안마당처럼 반들반들 윤이 난다.
그러한 시골역 역장에게 존경하고 흠모하는 분이 계셨으니 바로 시문학사의 큰 산맥과 같은 시인 정완영 선생님.
- 15:47분 도착하는 부산행 무궁화호를 타고 황간역에 오신 백수선생님을 열차까지 마중 나온 시골역장 -
백수 선생님은 어렸을 적 이 황간역에서 내려 어머니 손을 잡고 외갓집을 갔다.
마음은 벌써 외갓집 마당에 가 있어, 종종 걸음이 마냥 더뎠을 외갓집 가는 길.
시골역장은 백수 선생님께 어머니 품과도 같은 황간역 주변에 시인의 외갓집 동네에서 주워 온 옛날 기와에다
백수 선생님의 시조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 환영하는 객석의 주민들에게 손을 들어 답례하시는 백수 선생님 -
동네 아낙들이 못 쓰는 옹기, 항아리 등을 하나 둘, 날라 역에 앉혀놓으면 그 위에 한 편 한 편, 시와 그림을 그려나갔는데
어느새 황간역 광장(이라기보다는 앞마당)과 역사, 그리고 철로 주변에는 마치 토박이 원주민처럼 잠시 쉬어가는 여행객처럼,
혹은 말없이 반겨주는 역무원처럼 옹기종기 항아리시화가 자리를 잡고 이야기마당을 펼치게 되었다.
- 대전 연정국악원에서 오신 장현숙 님의 경기민요, 얼쑤 흥~! -
그렇게 시작된 그림은 제법 많은 식구가 되어, 4월 한 달 동안 전시회를 갖기로 하였고
특별히 백수 선생님을 모시고 음악회를 열게 된 것이다.
시골역장은 마치 <봄나물 밥상과도 같은 소박한 동시조 그림전>이라고 겸손하게 자신의 그림을 소개하면서,
백수 정완영 시인이 이루신 위대한 문학적 성취의 극히 일부분이나마 많은 이들에게 알리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고
시화전의 취지를 밝혔다. 시가 시집에만 들어있는 것보다 이렇게 일상생활 속에서 함께 살아 숨 쉬면 얼마나 좋겠느냐며.
- 백수 선생님을 위해 제자들이 마련한 음악회를 지켜보고 계시는 선생님. 어린 시절 외갓집 가던 길을 더듬고 계실까… -
"선생님께서 열차에서 내리실 때 맨 마지막 계단에서 펄쩍 뛰어 내리셨습니다. 순간 깜짝 놀라면서도 시골역장의 머릿속엔 선생님의 동시조 <외갓집 가는 날>의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
마음은
날아가는데
기차는 자꾸 기어가고」
"그렇지요. 선생님께서 어릴 적 상주군 모동면 수봉리에 있던 외갓집에 가실 때는 기차를 타고 와서
황간역에서 이렇게 내리셨겠지요.
그러니 황간역은 백수 정완영 시인의 외갓집 가는 역이고, 숱한 시조와 동시조로 노래한 고향과 어머니의 고향역,
곧 백수 시인의 마음의 고향역입니다."
시골역장이 황간역 곳곳의 항아리에 백수 정완영 선생님의 시를 담아 놓고,
특히 4월 한 달 동안 황간역 갤러리에서 <백수 정완영 시인의 동시조 그림전>을 차린 이유라고 그림전의 취지를 이렇게 설명한다.
음악회의 무대는 인근비료공장에서 얻은 여섯 개의 판넬을 붙여 만들었을 뿐이고,
역장은 그 위에 레드카펫(붉은 부직포)을 깔았을 뿐이고,
돈 주고도 구경 못 하는 내로라하는 재주꾼들이 전국에서 달려와 주었을 뿐이고,
특히 인근의 유치원,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어여쁘게 동시조를 노래하고 낭송해줬을 뿐이고,
작곡가는 백수 선생님의 작품으로 좋은 노래를 만들었을 뿐인데
백수 선생님을 모신 음악회가 이렇게 가슴 벅차게 훌륭한 음악회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시골역장은 백수 선생님 앞에서 어린애처럼 감사하고 행복해 했다.
- 이번 <작은 음악회>를 위해 역장님을 도운 영동의 마당발 최정란 시인. 백수 선생님 곁에서 백수 선생님의 손발이 되어 마음을 헤아려드리는 착한 시인이다. 시「적막한 봄」과 자작시「화신제」를 낭송하고 있다-
음악회는 해가 꼴딱 넘어가 저 너머 월류봉에 어둠이 드리워질 때까지 끝날 줄을 몰랐고,
관객들은 역 마당에서 오래오래 감동에 젖었다.
- 동래학춤 이수자 박소산 님. 문화예술의 향기가 연꽃처럼 피어나는 연지문화원 예술감독 -
출연자들에게 출연료 한 푼 없이 올갱이 해장국 한 그릇과 막걸리 한 잔으로 때운다고 감사와 미안함을 전하는 역장님,
내내 송구스러워 했지만 그래서 음악회는 더욱 빛났고 <작지만 큰 음악회>가 되었다.
- 동요 <바다 앞에서-심순보 곡>와 <물수제비-신재창 곡>, 어린이들이 백수 시인의 곱고 예쁜 동요를 부르는 것만으로도 시골역장은 보람을 느낀다고. 황간초 어린이합창단 -
- 황간 유치원에서 두 어린이가 나와 선생님의 동시조를 낭독, 백수 선생님을 흐뭇하게 해드렸다 -
이제 황간역은 시골역장의 손길에 의해 소박하지만 특별하게 가꾸어진 추억의 장소가 되어가고 있다.
시골역으로서의 정겨움을 가득 안고 지역민들에게는 물론, 여행객에게도 더욱 사랑받는 우리들 마음의 고향역으로,
그리고 시인의 시심까지 한 아름 덤으로 안겨줄 그리운 장소로 오래오래 남아 있기를 바란다.
- 백수선생님의 작품을 감상하는 황간 초등학교 어린이합창단 -
- 「You raise me up」을 서툰 솜씨로 연주하고 있는 필자 -
꽃 지고 잎 돋는 4월, 무작정 어디로든 떠나고 싶은 여행을 구상중이라면 경부선 무궁화호를 타고 황간역에 내려 보자.
소문 듣고 찾아온 여행객이라고 하면 정 많은 시골 역장이 달짝지근한 양촌리 커피 한잔을 슬쩍 건넬지도 모른다.
- 황간역에 가면 흔하게 볼 수 있는 항아리 역무원들 -
- 대전의 <연정국악원>에서 온 조경순 님(좌)과 김옥순 님의 경기민요 사철가>
조경순 님은 백수 선생님의 제자이면서 철도가족이기도 하다.-
- 참깨방송 대표 김종환 님. 갑자기 불려나와 준비도 없이 <토함산>을 한 곡 쭈욱 뽑았다. 김종환 대표는 이 날 백수 선생님의 동정을 열과 성을 다해 영상에 담아주었다-
-시낭송을 해주신 백수 선생님의 제자 김석인 시인. 2014년 신춘문예 당선 -
- 공연을 마치고 헤어지기 아쉬운 출연진들과 관객이 한 컷!-
- 정완영 선생님의 「울엄마 봄」-
(글: 김영주, 사진제공: 김교식, 정태경, 곽상섭, 강병규, 김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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