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즐은 언제나 기억의 저편과 연결되어 있다
김영주
1.
다 늦게 '시를 쓰는 사람'이 됐다.
때때로 나는 내가 어쩌다가 이 나이에 시를 쓰게 되었을까를 생각하다가
시라도 쓰지 않았다면 그럼 나는 뭘 했을까, 에 생각이 미친다.
2.
시를 쓰느라 마음이 바쁘고 초조한 적은 없었다.
우연히 마주친 한 조각의 퍼즐을 소중한 인연처럼 집어 들고 생각날 때마다 들여다본다.
그런 기억의 파편들을 고물처럼 모아놓는다.
3.
시가 안돼서, 시상을 찾아서, 바다나 숲을 찾아 여행을 해본 일도 없다.
내 시의 '꺼리'는 내 곁의 아주 사소한 것들 속에서 저 좀 보아달라며 눈 마주치길 기다리고 있다.
불쑥불쑥 솟구치는 서러움, 근원적인 고통에 빠져들 때면 예수가 왜 십자가에 못 박혔는지,
부처는 왜 머리를 깎고 산으로 들어갔는지 까지 가 있곤 하는데
그럴 땐 그 우울한 프리즘을 통해 가만히 밖을 내다본다.
4.
시를 쓰기 위해 정색을 하고 앉아본 기억도 없다.
내게 시를 위한 시간은 그저 자투리 시간뿐이므로 틈틈이 수십 번,
혹은 수백 번 들여다 본 후에야 겨우 하나, 내 것으로 가질 수가 있다.
혹 가다가, 빼고 보탤 것 없이 한 번에 완성되는, 거저 줍는 놈이 나올 때도 있다.
5.
완성된 퍼즐을 바깥 세상에 내보낸다.
설레거나 두근거리는 대신 어린 딸아이의 가슴에
하얀 손수건을 달아주고 초등학교에 보내는 마음이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대견한 쓸데없는 너그러움은
글 쓰는 사람에게 있어 가장 경계해야할 태도라고 이론서에 쓰여 있다.
6.
외면당한 슬픔에 내 슬픔을 얹는다.
블루는 전염이 잘 되는 색깔이다.
세월을 집어삼킨 바닷물은 시퍼렇게 시치미를 뗀다.
그 속에서 흐느끼는 목소리도 새파랗게 질린 채 숨이 멎었다.
7.
하루 종일 볕이 들지 않는 오래 된 연립주택 베란다 밑,
반경 1미터 반의 축축한 땅이 우주의 전부인,
늙은 개의 눈망울에서 살아있는 목숨의 지루함을, 읽는다.
내가 개가 된 듯 아프다.
8.
‘니들 시러’ 그들의 정직함을 표절하고 싶다. ‘아, 나도 정말 니들 시러… 시러…’
경기도 수원생. 2009년 <<유심>>으로 등단. 시집 『미안하다,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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