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일하는 주부는 늦잠도 잘 수 없이 바쁜 날이지요.
장마철이라 빨래 걱정에 날씨 먼저 살피며
하루 일과를 재빠르게 스케치하는데
백수선생님 수원 오신다는 문자 메시지를 회장님으로 부터 받았습니다.
부지런히 집안일 마치고 인천에도 다녀와야하는 일과가 있었지만
망설임없이 선생님을 뵙겠다고 하고 서두르기 시작했습니다.
2시 10분, 수원역에 도착하신 선생님을
유선 선생님, 밝덩굴 선생님, 최오균 선생님, 진순분 선생님, 박희옥 선생님 그리고 저
이렇게 여섯명의 회원이 선생님을 맞아드렸습니다.
수원은 김천서 올라오시는 중간 지점으로
선생님이 선택하시는 여행 코스이라십니다.
수원에서 다시 서울로 버스로 갈아타고 가시면
큰 영식 댁까지 가실 수 있으시다구요.
선생님과 차 한 잔 나누는 시간도 우리에겐 소중한데
선생님은 몇 말씀 해주시고 싶은 마음에 조용한 곳을 찾으셨습니다.
우리 일행은 선생님을 인성교육원(시조공부하는 장소) 교육장으로 모시고 왔습니다.
나이가 드니 사람이 그리워진다시며
전국에 인연이 닿았던 장소와 제자들을 하나하나 돌아보신다는 말씀에
또 숙연해지고 말았습니다.
시조에는 다섯가지 원칙이 있다는 말씀을 시작으로 옮겨 봅니다.
1. 틀을 부수지 마라. 시조는 민족시이므로 기본을 지켜야 한다.
2. 가락을 잡아라. 리듬을 놓지지 말아야 한다.
3. 뿌리가 있는 시를 써라.
역사 비판의식이든, 순수 서정이든, 민족정서이든 시사하는 바를 분명히 하라.
4. 답답한 시를 쓰지 마라. 작은 거라도 수긍이 가는 속시원한 시를 써라.
5. 품위를 지켜라.
봄비로구나
젖어서 돌아가자
고향 강둑길
위 시는 일본의 하이쿠입니다.
일본의 국시인 하이쿠는 5.7.5. 열 일곱자로 일본을 다 말합니다.
그 말 속에 촌철살인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45자나 됩니다.
그 속에 우주를 담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이쿠는 세계 명문대의 교재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쓰면 됩니다.
일본이 일본인 이유가 또 있습니다.
일본은 16대왕부터 하이쿠를 썼습니다.
일본은 연초에 왕이 시제를 던지면 전국에서 8천 만통의 시가가 답지합니다.
반상회가 끝나면 하이쿠를 쓰고 헤어집니다.
중앙일보 홍진기 사장 시절, 어느 장관에게
시조 원고를 청탁한 적이 있었으나 며칠 고심끝에 쓰지 못하겠다는 답을 받았습니다.
일본과 중국은 자기네 문화를 업수이 여기지 않습니다.
중국 역사의 핵은 당.송시대이고 거기서 당송 8대가가 나왔습니다.
그들의 문화를 말할 때 이 셋은 누가 먼저고 나중이랄 것 없는 닭과 달걀과 같은 관계입니다.
그들도 5언절구 7언 절구를 쓰는데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우리만이 우리것을 하찮게 생각하고 부끄러워합니다.
자, 시조로 돌아갑시다.
3 4 3 4
3 4 3 4
3 5 4 3 의 율격 있습니다만,
초 중장은 2 7, 1 6, 4 5, 3 5의 융통성이 있습니다.
종장의 3은 부동이지만 5는 7까지 가능합니다.
시조의 종장은 왜 3, 5 인가를
할머니 물레질과, 도리깨질, 다듬잇소리, 꽹과리에 비유합니다.
치고 때리고 돌리다가 다시 휘감아 돌려치는 그 오묘한 맛이 거기에 들어있습니다.
적어보세요.
시 쓰는 밤에 / 정완영
내가 밤을 새워가며 시를 자꾸 쓰는 뜻은
낙화시절 보냈는데도 못다한 말 있기 때문
꽃 지고 꽃 속에 물리는 까만 씨앗 있기 때문
초장만 보면 설명입니다.
그러나 중, 종장에 이미지가 있습니다.
임진강에 서서 / 정완영
나룻배 하나만 띄우면 북녘땅이 저기인데
새들은 넘나드는데, 철따라 꽃 피는데
강물은 흐르지 않고 철조망만 흐르더라
이 시조는 서울의 시중은행장 8명에게 강의를 하다가
종장만 던지고 초 중장을 완성해보라고 하였는데
끝내 나오지 못하였습니다.
여기서 데, 데, 데로 끝낸 것은 다 하는데 왜 우리만 못하느냐 하는 탄식입니다.
장릉에 와서 / 정완영
꽃다운 목숨이 졌기에 꽃다워라 이 몸 한 철
한 줌 흙 보태도 그만 안보태도 그만인 걸
강산에 봄은 또 오고 소쩍새는 왜 우는가
17세 왕의 무덤 앞에서 한 탄식입니다.
한 사람 죽어 흙으로 돌아가는 게 생사의 이치지만
그 왕이 죽어 한 줌 흙 보태도 그만 안보태도 그만인데
왜 죽어 흙으로 돌아갔는가 하는 탄식입니다.
운문사 / 정완영
구름으로 지은 문이 이 세상에 어디 있는가
구름으로 지은 문 속에 사는 절이 어디 있는가
거짓말, 엄청난 거짓말 엄청나서 쇠북이 운다
한 방에 보내도록 종장을 썼습니다.
거짓말이라고 해서 절이 깎아내려지는게 아닙니다
오히려 절의 격을 올려주는 것이지요.
이렇게 말씀을 듣다보니 한 시간이 훌쩍 가버렸습니다.
더 많은 말씀이 있었지만 아끼렵니다. ㅎㅎ
세수 아흔 둘이시면 거동도 불편하실 터인데
한 말씀이라도 더 후학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마음에
번거롭다 안하시고 누추한 곳까지 와주신 선생님
일부러 찾아가서 뵙기도 어려운 기회를 하늘이 또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선생님을 모시고 선생님 말씀을 두번째 듣습니다만
책에서, 혹은 전해듣는 말씀과는 또 다른 감동이 있습니다.
이 감동을 절대로 남발하고 싶지 않았습니다만
회장님의 엄명을 받잡아 여러분과 나눕니다. ^^
선생님을 차에 모셔드리고 오래오래 손을 흔들어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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