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U

백수 정완영 선생님 뵙고 왔습니다

꿍이와 엄지검지 2010. 6. 7. 13:24

 

 

 

먼저..

 

선생님을 뵙고 가슴에 잔잔한 충격을 안고 왔습니다.

 

때문에 기행문 쓸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그동안 많은 분들이

선생님을 뵈온 소감을 수 없이 많은 이야기로 표현했을 터인데

나같은 시조 초년생이 한 마디 보태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라는 생각에

 

백지에 그저

 

선생님, 고맙습니다..

 

라고 한 마디 쓸 수 있었을까..

그리고 나머지는 여백으로 남겨두고 싶었습니다.

 

그 "고맙습니다"는

우리나라에 선생님이 계셔서,

이렇게 뵈올 수 있어서,

그리고 이렇게 가까이서 선생님의 육성으로

시조 잘 지어라 하시는 격려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던 것

그런 등등의 고맙습니다.. 였습니다. 

 

         남은 시간은 시조다운 시조를 쓰는 것으로

         선생님의 말씀을 행동으로 옮겨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지요.

  

         아뭏든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기도 하고

         하나도 없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경북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91 번지 

         직지사 산자락 밑 안온한 그늘 아래 앉혀진 백수 문학관은

         선생님의 성품이신듯 요란하지 않은 조촐한 기품으로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막 시작된 초여름의 더위로 인해

         잠깐 졸고 있다가 우리를 보고 깜짝 반기는듯 하였습니다.

 

         서울에서 일부러 내려오신 선생님과 상견례를 갖추고

         강연실에서 백수선생님의 문학세계를 영상 다큐멘터리로 들으며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아흔 둘이라는 고령이심에도 불구하고

         시작활동을 왕성히 하신다는 말씀이

         헛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시는 듯

         선생님은 아직도 맑은 시심의 후광을 안고

         단아한 모습의 소년처럼 저희를 맞아 주셨습니다.

 

         시조는 말과 말의 행간에 더 많은 침묵을 심어 두는 것이다,

         야단스럽지 않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혹자는 선생님을 불교 신자로 알고 있지만

         실은, 시를 찾아 들어가다보니 거기 불교가 있더라고

         불교와의 인연으로부터 말씀을 시작하셨습니다.

 

         "시인이 되고 한 번도 육신이 행복한 적이 없다.

          그러나 시를 쓰는 순간만은 살고 싶은 순간이었고

          그 순간만큼은 행복했다"

          고  하시는 부분에서는 그만 목이 꽉 메이며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지금의 시조는 시조의 틀이 덜 잡혔다,

          시조는 종장의 화룡정점이 시조를 완성한다,

          마흔 다섯자로 우주 말씀을 다하고도 자리가 남아야 한다,

          말을 묻어 두고 보여만 주어야 한다..

  

62년 문학의 길을 걸어오신 선생님,

비록 선생님은 힘드셨지만

후학들은 마음놓고 문학에 종사하길 바란다시는 선생님은

간간이 해맑은 소년의 모습으로 돌아가

선생님이 좋아하시는 시조를 암송하셨습니다.

시조의 행간 같은 모습으로 가만가만 그렇게..

 

 

          1. 정형을 지켜라

             한 두자 벗어나서 열가지 흠을 덮을 수 있으면 일탈도 허용하나 그렇지 않으면 쓰지 마라

          2. 율격, 리듬을 찾아라

          3. 쉽게 써라

          4. 답답한 시를 쓰지 마라

          5. 격조가 높아야한다

             고, 시조를 쓰는 다섯 가지 수칙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셨습니다.

 

선생님께서 좋아하시는 산채 정식으로 점심 대접을 해드리고

선생님 처소로 옮겨 회장님이 준비해주신 

            선생님의 신작시집 <<구름 산방>> 책에 싸인을 받았습니다.

 

            액자와 병풍으로 만들어져 품격이 더하여진 선생님의 작품을 하나하나 짚어 주시며

            만들어 주신 이와 작품에 얽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 새로운 것을 또 알았네요.

시집 증정하면서 혜존, 청람이라는 말 쓰지마라

그 말, 일본에서 건너왔다,

시조는 우리 신데 왜 좋은 우리 말을 쓰지 않는가.

 

 

"선생님께 드립니다, 라고 예쁘게 써라"

 

하시며 잠깐.. 높은 목소리를 내십니다.

 

 

  

집에 와 <<구름산방>>을 읽어 내리며

어머니 그리는 시조에 머물러서는 또 눈시울이 뜨거워 집니다.


머리가 하얀 큰 영애이신 정선생님,

아버님을 곁에서 모시는 일이 힘드시다고 저희들에게 투정을 하십니다.

그러나 저는 그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제 어머니도 생존해 계시다면 1919년, 기미생 아흔 둘이십니다.

         그래서 더더욱 어머니 생각에 선생님이 염려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외람되게도 선생님의 큰 영애 정선생님께

"선생님 모시는 일을 개인적인 일이라 생각지 마시고

국가적인 일이라 생각하세요.." 라는 부탁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번 기행에 함께 해주신 

신경애 선생님, 김순재 선생님, 민분이 선생님, 권예자 선생님 고맙습니다. 

 

좋은 말씀으로 깊은 가르침을 주신

유선 선생님, 박용하 선생님, 김석철 선생님, 한승욱 선생님 고맙습니다.

 

 

             먼 길, 차를 제공해주시고 운전해주신 이수영 선생님, 박현진 선생님,

             두 분의 노고로 열 한 사람이

             안전하고 행복한 여행이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2호차 조수 역할 잘 해주신 박희옥선생님, 고맙습니다.

 

가이드해주신 최정란 선생님 고맙습니다.

수고해주신데 대한 감사의 표현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안내해주시고 재밌는 말씀해주시고

오면서 먹으라고 사과도 싸주신 장지성선생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회원 전원에게 <<구름산방>> 책과 함께

백수선생님의 흔적을 간직할 수 있게 해주신 회장님 고맙습니다.

 

 

저는 처음 한 자리이지만 

오래오래 끈끈한 정으로 이어온 어른들을 모시고

그 그늘의 힘을 느끼는 진중한 여행이었습니다.

한 길을 가는 도반의 정 오래오래 나누고 싶습니다.

 

 

             미처  언급하지 못한 부분은 다른 선생님들께서 채워주시리라 믿으며

             두서없이 이렇게 선생님을 뵈온 이야기를 대신합니다.

 

 

   모든 분들께 행복한 여행이 되셨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고맙습니다.

 

 

 

              2010년 6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