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시

애인구함 / 최정란

꿍이와 엄지검지 2010. 9. 4. 10:33

 

 

 

대구 발 시외버스 타고

토요일이면 집에 갔다

한껏 볼륨 높인 뽕짝을 들으며

좌석 등받이 뒤편에

애, 인, 구, 함,

볼펜으로 갈겨 쓴 어설픈 춘정

코웃음 치던 스무 살

그 때는 몰랐다

사람은 평생 자신의 등 뒤에

절실하게 구하는 것

써 붙이고 다니게 되리라는 것,

지울 수 없는 구, 함, 을

부끄러운 줄 모르고

매달고 다니게 되리라는 것,

가끔 남에게 등 돌리면서

앞선 남의 등을 보고 달리는 동안

멈춰 서서 돌아본 적 없는

뻣뻣한 내 등은

무엇이 필요하다는 구, 함, 을

고함처럼 크게 외치고 있었을까

내려꽂히는 햇살 따갑다


- 최정란, <애인구함>  <우리시> 2007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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