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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백수정완영님

꿍이와 엄지검지 2011. 1. 5. 09:49

한국을 행복하게 만드는 知性④

                    

필자의 知人중에는 좀 특별하신 몇분이 있다. 각자 名家를 이루셨으나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사신다. 나는 이 분들을 존경하며 지낸다. 이들은 한국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숨은 보배다. 무엇이 보물인지 잠시 여유를 갖고,  아리랑그림 작품을 감상하시면서 오늘의 文明사회를  생각한다.<前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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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아리랑2. 68X72cm 2008작

  태안앞 바다의 기름을 걷고 되 살아난 자연의 고마움을 느낀다. 자연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공부했다. 또다시 그런 바보같은 일이 생기면 한국은 조용히 사라져야한다. 지구라는 공동체에서 욕먹고 손가락질 받는것도 한계가 있지 않겠는가 (김정)  






   

     91세의 童心, 정완영님




문학에는 연령이 없다는걸 원로 時調詩人이신 白水 鄭椀永선생이 깨우쳐 준다. 현재 국내 詩壇에 91세의 현역시인은 정완영 황금찬 두 분이다.

필자가 백수선생을 처음 뵌것은 1981년. 당시 남산 괴테문화원에서 J.뷜러 문화원장 이 초대한 ‘김정 독일소묘전’초대전에 관람 오셨을때다. 벌써 29년 됬다. 그분의 詩는 접했지만, 相面은 그때가 처음이다.

시조시인으로서는 아마도 노산 이은상 이후 7,80년대 시조문학을 이끌면서 현역 시조시인은 거의 백수선생의 제자다. 그런데도 백수선생은 티 안내고 늘 뒤에 숨는다. 초야에 묻혀 ‘보리밥에 물 말아 된장 먹는’ 스타일이다. 필자가 오랫동안 뵈도 늘 조용하시다. 그러나 가슴속은 詩作의 요동치는 내부폭발로 시를 안 쓰면 안된다. 그의 특이한 이력이 그렇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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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는 최근의 모습. 아래 사진은 1981년 남산 괴테문화원(요즘은 주한독일문화원이라고함)전시장에 오셨을때 모습. 왼쪽은 작가 최자영


 

 경북 김천 봉산면 봉계초등학교를 나온뒤 부친을 따라 일본으로 갔고, 여관에 투숙중 부친은 행방불명이 됬다. 하루아침에 13세 소년은 도꾜 길거리의 고생과 방랑생활이 됬다. 중학교는 일본에서 담넘어 도둑공부를 했다. 16세에 귀국하여 일본社主의 버스회사 경리로 취직했고 습작시를 썼다. 23세부터 본격시를 쓰기시작했는데, 일본회사에선 일어를 전용해야 하는데 조선말로 시 한편을 썼다가 발각돼 쫒겨났다.  27세때 해방 맞은후 자유로운 몸으로 전국 124郡을 다니며 시를 썼다. 몰골은 걸인이지만 시를 쓰는 즐거움에 빠져 詩作생활은 계속됬다. 밥을 굶어도 시를 써야만 했고, 시를 안 쓰면 가슴이 터질것만 같았다. 조선일보 동아일보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한 이후에 계속써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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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대략 2천편을 썼고, 그 중 100편을 골라 일곱 번째 시조집 ‘蓮과 바람’을 1984년냈다. 이 시조집에서 1편을 본다




      乙 淑 島

 세월도 洛東江 따라

 七百 里 길 흘러와서

 마지막 바다 가까운

 河口에선 지쳣던가

 乙淑島 갈대밭 베고

 질펀하게 누워있네.




 그래서 목노 酒店엔

 대낮에도 등을 달고

 흔들리는 흰 술 한 잔을

 落日 앞에 받아 놓면

 갈매기 울음 소리가

 술잔에 와 떨어지네.




 백발이 갈대밭처럼

 서걱이는 老沙工도

 강물만 江이 아니라

 하루 해도 江이라며

 金海 벌 막막히 저무는

 또 하나의 江을 보데. <한국문학 2월호, 1981>




백수선생은 어린이에 대한 애정과 어머니에 관한 효심이 깊어서, 읽는이의 가슴을 적셔놓는다. 필자도 그분의 동시조를 매우 좋아한다. 마치 맑은 샘물같다.

다음은 동시조집 ‘엄마목소리’에서 몇편 소개한다.




‘눈 내리는 밤’

눈이 내리는 밤은 온 세상이 부드럽다

휴전선 가시 돋친 철조망도 부드럽고

남과 북 오가는 철새들 나래짓도 부드럽다.

눈이 내리는 밤은 온 세상이 동화 같다

빌딩도 성냥갑 같고 가로등도 꿈 속 같고

꽁무니 불을 단 차들은 동화나라 반디 같다.







‘우물물’

우리가 잠이 들면 우물물도 잠이 들고

우리가 잠을 깨면 우물물도 눈 부빈다

우리가 꿈꾸는 밤이면 별빛 찰랑 실리고.







‘엄마 목소리’

보리밭 건너오는 봄바람이 더 환하냐

징검다리 건너오는 시냇물이 더 환하냐

아니다 엄마 목소리 목소리가 더 환하다.

혼자 핀 살구나무 꽃그늘이 더 환하냐

눈감고도 찾아드는 골목길이 더 환하냐

아니다 엄마 목소리 그 목소리 더 환하다.







‘한강의 봄’

강물 따라 흘러가는

올림픽 고속도로

물방개 같은 차가

줄을 지어 가고 있다

지금 막

물에서 올랐나

물 흘리며 가고 있다.







‘봄 오는 소리1’

별빛도 소근소근

상추씨도 소곤소곤

물오른 살구나무

꽃가지도 소곤소곤

밤새 내

내 귀가 가려워

잠이 오지 않습니다.







‘여름은 즐거워’

동구밖 푸른 숲을 일으키는 매미소리

창포밭 맑은 못물 잠재우는 물잠자리

포충망 하나만 들어도 온 여름은 내것이다.

반딧불 반짝반짝 떠다니는 저 별하늘

벌레소리 대롱대롱 매달리는 저 이슬밭

채집통 하나만 가져도 온 여름은 내 차지다.







백수선생은 학력이 없다. 공부대신 방방곡곡 유랑생활로 감성적 시를 담아왔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시는 아주 솔직하다. 그의 남다른 고난 경험과 풍부한 한국정서감정이 백수선생의 소리다. 이른바 고학력에서 발견되는 손끝의 ‘말 장난’ 이 없다. 청정채소다. 우리는 그런 맑은 문학을 먹고 건강한 생각을 갖게 된다. 마치 국민들에게 주는 정신적 보약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고 따르는 것이다. 높은 자리에 있어본 적 없는 그에게 백수문학관 까지 세워 준다는 것도 다 ‘맑은 詩정신’ 을 따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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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의 백수선생과 이야기를 나누는 필자.




필자가 그를 존경하는것도 강직하신 심성이다. 말 장난이나 출세를 바라는 체질이 아니다. 문단정치도 모르고 오로지 좋은 작품만 생각하신다. 조용한 野性이다. 16년전 사당동집에  찾아뵌후 오늘 잠실에서 만났다. 필자의 방문에 老顔은 눈시울을 적신다. ‘나같은 늙은이를 찾아 주어 고맙소. 아무 도움도 못 주는 나를...김교수의 순수성은 예전부터 알긴했지만...’ 말끝을 흐리신다. 나도 그분을 존경하지만 그분도 필자를 과분할 정도로 사랑해 주신다. 내 나이 70이지만, 그 앞에선 완전 무장해제된 ‘새나라의 어린이’ 가 된다.

-혹시 젊으셨을 때 詩作지도를 받으셨는지요...?

‘지도는 없었죠. 시대상황이...친할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혹 기억 나는 문인들이 있으신지요...?

‘경상도 사람으로는 張 應斗(호 何步)와 전라도사람으론 영암태생의 曺雲의 시조를 많이봤습니다. 何步는 아호처럼 ’썩은 세상을 어찌하며 걸어 갈 것인가‘라는 암시를 준 멋진 시조인 이였습니다. 나역시 하보 영향을 받았습니다.

-하보선생의 영향을 받아 백수선생님도 세상을 맑게 살아오셨군요...허허허...그건 그렇고요, 백수 문학관은 언제 개관  됬습니까?

‘2008. 12.10개관했습니다. 김천시와 조계종, 정부등에서 고맙게도 지원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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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경북 김천시 직지사옆 백수문학관이 오픈되었다.




-어머니에 관해 많은 시작을 하셨는데요...?

‘어머님은 49세에 고생만 하시다 돌아 가셨지요. 또 8년째 치매를 앓던 아내, 아이둘을 남기고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가엾은 며느리...이들을 생각하며 내 놓은 童時調集이 바로<엄마 목소리> 입니다’

-요즘은 건강이 좀 어떠십니까?

‘소식을 하죠. 91세니까요. 아침엔 죽 종류로 하고 점심은 외식도 하지만, 저녁은 인절미정도로 간단히 먹습니다’

-젊은이들에게 하실 말씀좀...

‘소동파가 말하길 하루 이틀은 지루하지만, 십년 이십년은 덧없이 간다고 했죠.. 또 神은 곡선을 만들어 놨습니다. 즉 자연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사람은 고속도로등 직선을 만듭니다. 자연을 파괴하죠. 파괴이유는 신속, 경제를 앞세웁니다. 결국 우리는 파괴에 휩쓸려 죽게 됩니다. 현재 시조시인이 1,800명 됩니다. 그런데, 뽑고 싶은 작품이 별로 없습니다. 그건 글쓰는 예술가가 고민을 많이 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그럼, 오늘 만나뵈어 감사했습니다. 또 언제 뵐런지요...’

그때 필자 손을 잡으시고는,

‘김천에 꼭 오셔서 직지사 소나무 하나 그려주소. 김교수의 소나무는 한국의 멋과 혼이 있어요, 그 혼을... 미국 일본 소나무도 필요없고 반드시 김정의 소나무라야 제격이요. 그리고 얼굴 스케치도 날 주소. 마지막 소원이요’ 하신다. 필자는 그냥 엉거주춤 하니까 꼭 부탁한다는 말을 강조하신다. 아마도 문학관에 걸어둘 생각인듯 했다.

 기회가 되면 김천에 한번 방문키로 하고 백수선생과 기약 없이 헤어졌다.

출처 : 이심전심
글쓴이 : 연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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