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작은 2월에 듣는 짧은 시 긴 이야기 | |||||||
지상중계 | 유심시낭독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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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은 사랑이었다. 행사 시간 30분을 남겨놓고는 긴장증후군에 시달린다. 행사를 주최하는 사람들은 늘 그렇다. 그러나 불안은 기우였다. 삼삼오오 달려온 시인들의 걸음에 금방 자리는 차고 넘쳤다. 새해 첫 유심시낭독회, 낯익은 얼굴들이 많았다. 2월의 낭독회는 《유심》을 통해 등단한 사람들의 모임인 ‘유심문학회(유심모)’가 주최했다. 우리는 지금 세계가 손안에 들어 있는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지만 시낭독회에서 아날로그로 만나는 얼굴들은 언제나 반갑다.
진행을 맡은 이승현 시인은 인생을 산으로 비유한 객담으로 시낭독회의 문을 열었다. 강인한 시인, 김추인 시인, 김영탁 시인, 신승철 시인, 윤범모 시인 등을 소개하고 “여기 앉으신 모든 분이 내빈”이라며 박수를 유도했다.
부드러워진 실내의 분위기, 시낭독회의 첫 순서는 초청연주였다. 김준모 씨의 한국식 오카리나와 김초선 씨의 바이올린이 청중들의 마음을 촉촉이 적셨다. 오카리나 특유의 음색에 바이올린이 어우러져 관객을 환상적인 세계로 끌고 갔고 청중은 현실세계로 돌아오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그래서였나? 김영주 시인이 김준모 씨의 오카리나 연주를 배경음악 삼아 알퐁스 도테의 ‘별’의 일부를 낭송하는 동안에도 관객들은 중생계의 사람들 같지 않았다. 뒤를 받쳐주는 오카리나도 한몫했지만, 김영주 시인은 역시 프로였다. 잘 소화시킨 시스루룩에서부터 결코 쉽지 않은 이야기임에도 줄줄이 암송하는 모습에서 열정과 정성을 엿볼 수 있었다. 차분하게 이어지는 목동의 이야기를 들으며 누구는 목동이 되었고 또 누구는 아가씨가 되어보는 시간이었다.
이어지는 시는 초청 시인 서정춘 시인의 〈종소리〉와 〈빨랫줄〉이었다. 유심문학회 회원인 김대봉 시인이 ‘처음으로 관객 앞에서 시를 낭독한다’는 고백을 하고 두 편의 시를 큰소리로 낭독했다.
김대봉 시인은 “돌아오지 말아라” 부분을 힘주어 읊었다. 시인의 우렁찬 목소리에 종소리는 분명 산 너머 항아리가 되어 앉을 것 같았다. 덩달아 불빛이 깊어지고 있었다.
빨랫줄이 출렁거렸다. 머잖아 올 봄바람에 푸른 힘줄이 솟고 연분홍 치마가 나풀거렸다. 무관할 것 같은 〈종소리>와 〈빨랫줄〉이 어우러져 선명히 귀에 들어온다는 사회자의 멘트에 다음으로 건넜다.
박미산 시인은 낭송에 앞서 〈날아라, 수만 개의 눈으로〉는 ‘내가 20대라면 이렇게 하겠다.’라는 뜻이 담긴 내용이라고 언급했다. 시인을 보며 ‘통섭’을 떠올렸다. 태껸의 고수로도 알려진 박 시인은 낭독하는 시 속의 삶처럼 현재도 걸음을 늦추지 않고 있다.
“보너스 타면 무진기행을 가야겠다”에서 높아진 톤에 한 번 더 좌중을 웃음으로 이끌어 낸 사람은 이석란 시인이었다. 이 시인은 사는 곳이 ‘경남 창원’인데 교통체증이 걱정되어 이틀 전에 올라와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해 웃음과 함께 《유심》 출신임을 확실히 상기시켰다. 조신하게 낭독하다가 자신의 물안개에 그만 취했는지 당장 어디로라도 떠나야 할 것 같은 목소리로 들떠 있었다.
《악어야 저녁 먹으러 가자》라는 첫 시집을 들고 배성희 시인이 《유심》을 찾아왔다. 행사에 동참한 모든 이들에게 자신의 첫 시집을 선사한 배 시인은 시집 속에서 고른 시 〈코의 전성기〉를 낭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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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아서는 코골이의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다’는 사회자의 썰렁한 유머에 이어 초청 시인 유정이 시인이 등장했다.
초청 시인인 유정이 시인이 내리 두 편을 낭독했다. “시를 쓸 때, 단어의 중복을 피하는 것이 좋은 시라고 들었는데 ‘당신’이라는 단어가 자주 나왔으니, 여러분은 결과적으로 좋지 않은 시를 들은 것”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지난해 폭설이 내렸을 때, 그 눈들을 시로 많이 옮겼어요. 그 눈이 따뜻하고 포근하기보다는 아프고, 차갑고,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이미지를 가진 그런 시로 드러났습니다. 남들이 그래요. 행복할 것 같은데 무슨 고민이 있느냐고요. 여기 계신 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지금 행복한 얼굴로 앉아 계셔도 시를 쓴다는 것은 다 아픔이 있다는 것 아니겠어요? 지금 이 자리에서 저에게 15분이라는 시간이 주어졌는데 그 시간이 무겁게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첫째는, 시를 잘 몰라서 할 말이 없는 것이고 두 번째는 정말 어렵고, 무겁고, 힘들고, 무궁한 시를 15분 안에 줄여서 말하려니 그렇습니다. 풀어놓는 것보다 응축한다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문학의 이론 등은 많이 아실 테니 저는 제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제게 있어 문학은 거짓말로 시작되었습니다. 초등 2학년 때, ‘어머니’에 관한 시를 써오라는 숙제를 받고 나를 예뻐해 주시는 선생님의 맘에 들기 위해 중 2였던 외삼촌한테 가서 무작정 울었어요. 그렇게 해서 구한 숙제를 보고 정말로 네가 썼느냐는 선생님의 물음에 우물쭈물 그렇다고 답한 죄로 정말 잘 쓰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렇게 장황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시란 그 속에 없어 보이는 것은 만들어서 보이게 하고, 진실이지만 진실 아닌 것을 까뒤집는 것이 중요한 일인 것 같아서입니다.”
유 시인은 “시는 내성이 강한 바이러스라서 끝내 버릴 수 없는 존재”라며 단단하고도 단아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우리가 ‘시’라는 카테고리 안에 들어온 것은 현실적인 행복을 지향하기보다는 마음속의 아프고 고단한 것들은 달래주기 위함이 아니겠느냐며 시 쓰기의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시낭독회 초대의 글 중 유정이 시인을 소개하는 부분에서 명징하고 찬연한 시어들로 삶의 기운을 얹어 준다고 했는데 시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표현이 매우 적절했다는 생각을 했다. 이어 자작시를 낭송한 시인은 배재형 시인이었다.
유심아카데미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한국야쿠르트에 근무하면서도 그동안 행사에 참석하지 못해 죄송스럽다고 인사를 했다. 이어 홍보팀에 근무한다며 건강에 좋은 야쿠르트를 많이 애용해 달라는 광고로 분위를 업(Up)시켰다. 좌중에서 젊고 건강한 웃음이 넘쳤다. 낭독한 〈숨은 밥〉은 경비 일을 하는 지인의 마음이 되어 쓴 시라고 소개를 했다. 이어 등장한 정정례 시인이 자작시 〈공원〉을 차분하게 암송하는 동안 홀에는 공원에 있는 초록 잎과 작은 과일 그리고 새들까지 날아들어 싱그러움이 넘쳤다.
다시 오카리나의 시간으로 돌아와 잠시 쉬어 갔다. 김준모 연주자의 ‘독도 가는 길’은 뱃삯도 없는 무료 독도 여행이었다. 수많은 괭이갈매기의 울음을 들으며 삼봉호의 흔들림에 잠시 멀미가 일 듯도 했다. 아울러 탈북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도 한다는 연주자는 탈북 아이가 부른 ‘소쩍새’를 들려주었다. 끝으로 아이들의 여의찮은 사정을 알리며 후원 요청도 잊지 않았다.
여러 편의 시를 들으며 씻어낸 마음자리에 오카리나의 선율이 꽃을 뿌린 듯, 관객들의 얼굴이 맑게 변했다. 이제 오늘의 하이라이트가 남았다. 키 작은 2월에 듣는 짧은 시, 긴 이야기에 초청된 서정춘 시인이 좌중을 둘러보고는 최근에 쓴 시 〈명당〉(이번 호 유심시단 참조)을 읊었다.
곱게 일어선 채 “어머니!” 그리곤 정적. 이어져야 할 시간이 지났는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한참 후에야 다음 구절인 “내가 죽었어요”. 반 울음이었다. 〈명당〉은 0.5초 걸려서 쓴 시라고 툭 말문을 열었다. 말이 그렇다고 했다. 대추나무 벼락 맞듯 시를 쓰게 만든 그 어머니는 시인이 두 살 때 돌아가셨다고 했다.
“지금까지 어머니에 관한 시는 한 편도 못 썼어요. 이 시는 어머니가 불러 줘서 쓴 시 같아요. 써 놓고 참 많이도 울었어요.” 어머니를 생각하면 아픈 구석 없는 사람이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서정춘 시인에게 어머니는 유달리 서러운 존재로 굳어져 있는 듯했다. 어릴 적, 계모 밑에서 자라면서 숱한 구박을 받았노라고 털어놓으며 “그때 나는 《장화홍련전》을 열심히 읽으며 계모에 대한 증오심을 키울 정도였다.”는 고백도 했다. 가톨릭 분위기에서 자라났지만, 가톨릭의 정신으로는 살지 못했던 것도.
“‘죽편(竹篇)’은 내가 만든 말이에요. 대꽃, 또는 대나무, 해도 되지만 좀 더 고상하게 느껴지라고 그렇게 붙였어요. 시편, 옥편 할 때처럼 글 편자입니다. 그저 대나무에 관한 글 정도로 읽으면 될 것 같아요. 이 시는 4년 이상이 걸렸고 80번 이상 퇴고를 했어요. 등단하고 26년 만에 낸 첫 시집의 제목도 《죽편》입니다.” 서정춘 시인은 이야기 중에 〈30년 전 ―1959년 겨울〉이라는 시 한 편을 더 읊었다.
“어리고, 배고픈 자식이 고향을 떴다// 아가! 애비 말 잊지 마라/ 가서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곳/ 그곳이 고향이란다.”
굵직하고 낮게 깔리는 시인의 목소리를 따라 박수가 터져 나왔다. “어릴 때 나는 일기를 한 9년을 썼어요. 쓴 이유가 다른 게 아니라, 계모에 대한 미움을 증폭시키려고 썼어요. 어찌나 미웠던지 한 대 맞으면 세 대 맞았다고 쓰고(웃음) 밥을 주면 죽을 먹었다고(웃음) 쓰고, 아주 창작을 했어요. 하지만 그때 생각이지, 나중에는 아버지보다도 계모를 더 잘 모셨어요. 이복동생은 전적으로 내가 키웠고요. 제가 미션스쿨을 다녔어요. 고향이 순천입니다. 어렸을 때 교회 가면 누나들이 서정춘이 귀엽다고 하고 재미있게 지냈어요. 그렇게 컸어요. 어려웠던 시절, 중고등부 야간학부가 제 학력의 전부입니다. 가방끈도 짧고 게다가 설상가상 키까지 짧아, 그래서 시가 짧아진 거여.”(웃음)
문단에서 ‘3단(三短)’으로 통하는 서정춘 시인은 “한때는 아무렇게나 살았다”고 했다. 계모 밑에서 푸대접받고 자랐다는 어린 마음에 보복하겠다는 마음까지도 먹었는데 삶을 180도로 바꿔 준 계기가 있었다고 했다. 서울로 도망가려고 친구 집에 가서 차비 좀 해 달라며 방바닥에 누워 있는데 발에 책 한 권이 걸렸다. 운명의 장난처럼 만난 《부모은중경》. 시인은 그 책을 보는 순간 그만 울음이 터졌고 엄청나게 울었다고 했다. 판소리 가락처럼 구성진 서정춘 시인의 인생역정 이야기는 시 〈죽편〉이 노래로 만들어진 사연으로 넘어갔다.
“어느 날, 소리꾼 장사익이 느닷없이 〈죽편〉을 노래로 만들었다고 전화를 하더니 CD를 보내왔어요.”
우리에게는 ‘빨치산’으로 더 익숙한 ‘파르티잔’은 프랑스어라며 어원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덧붙여 일본인들의 부정확한 발음에 대해서 민족감정까지 결부시켜 시인 특유의 재치로 풀어가 좌중의 마음을 하나로 결집시켰다.
“파르티잔은 원래 양 치는 사람, 목동이라는 뜻이 있어요. 봄 산은 낮은 곳에서 차츰 위로 파랗게 올라가잖아요. 목동이 풀을 뜯기기 위해 산속으로 차근차근 들어가는 것처럼. 그렇게 산 속으로 들어가서 산사람이 된 것인데 거기에 이데올로기가 더해져 빨갱이가 된 거예요. 〈봄, 파르티잔〉은 원래 가지고 있던 목가적 내용에다 역사의 아픔까지도 아울러 보자는 취지에서 쓴 시입니다. 어찌 됐든 봄이면 파랗게 피우던 싹을 떠올렸어요. 파, 파, 정말 파란 봄을 잘 만들어서 불러보자 이거였지요. 봄, 파르티잔, 얼마나 좋아요, 이거. 꽃 그려 새 울려놓고/ 지리산 골짜기로 떠났다는/ 소식”
서정춘 시인이 풀어낸 시와 이야기. 짧은 시를 두고 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시인의 처절한 삶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천둥 같은 고통을 뚫고 번개처럼 나온 시가 아니면 안 될 일이다. 서정춘 시인이니까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관객들은 박수로 서정춘 시인의 시와 이야기에 값을 치렀지만, 평생 잊지 못할 이야기들을 가슴에 담고 가는 대가치고는 너무 헐하지 않았을까?
강인한 시인은 “유심시낭독회에 오면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 있어 서너 번 참석했다”며 “오늘의 초청 시인인 서정춘 시인은 우리 시단의 대단한 가객”이라고 말했다. 등단 후, 30여 년간 종적을 감췄다가 〈죽편〉을 들고 재입성한 서정춘 시인의 시를 “극약 같은 시”라고도 술회했다. “짧으면서도 에센스가 들어 있는 시, 잘못 먹으면 독이 될 수도 있는 시”라며 이 자리에서 보고 싶었고 보아서 기쁜 이름들을 호명했다.
정리/ 김택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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