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푸른 날
김영주
"똥 퍼 똥!"
해야지만 똥 푸는 맛이 났다
통만 해도 무거운데 오욕칠정을 차지게 담아
지게가 출렁일 때마다 좁은 고샅도 출렁였다
딸네 온 할머니가 눈저울을 치켜들면
탈 없던 똥지게꾼 심술 불뚝 도지곤 해
만만한 남의 채마밭에
홱- 끼얹고
화를 푼다
먹고 사는 일만큼 비우는 일 작지 않아
땅꾼도 나랏님도 똥 안 푸곤 못 살았으니
밥 앞엔 높고 낮아도 똥 앞에선 다 같았다
밥이 똥이 되고
똥이 밥 되던 시절
곰삭은 거름구덕에 발이 종종 빠졌지만
우리는 망아지처럼 코를 쥐며 뛰놀았다
무논의 웅덩이엔 올챙이 버들붕어
푸새밭 주변에는 메뚜기 왕잠자리
하늘은
높고 파랬다
우리는 쑥쑥 자랐다
- <<화중련>> 2013년 상반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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