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구점 세 개가 있는 데요
윤형돈
초등학교 입구에
문구점 세 개가 나란히 서 있는 데요
위에서부터
우등생 문구
반디 문구
가야 문구
차례대로 서로들 학용품을 진열하고
등교길의 아이들을 불러들이는 데요
아이들의 발길은 유독
유등생 문구로만 향하는 게 아닙니까?
이에 놀란 가야 문구 아저씨는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연일 더 크고 낭랑한 목소리로
아이들을 유도해 보지만
저들은 막무가내로 유등생 문구로만 가는 데요
금기야 가야문구 아저씨는
"준비물은 가야문구에서"
진한 화살 표시로 아이들을 유도해 보지만
그들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더란 말입니다.
내 짧은 생각에도 아마
저들이 먼 나라 가야제국 보다는
당장 우등생이 되고 싶은 간절한 이유에서
그쪽으로 몰려가지 않나 헤아려 보지만,
아직 그 정확한 사연은 아무도 모른 채
가운데 자리한 반디 문구만 줄곧
깜빡 깜빡 양쪽 눈치를 살피고 있더란 말입니다.
안부
윤형돈
만삭의 달력을 떼어 낸다
건듯 사월의 바람이 분다.
허름한 벽에
책력을 걸며
삶의 밑반찬이셨던
새우등 어머니,
산수유 꽃
아랑곳없이
콩자반이 또 떨어졌네요
윤형돈 시인의 시집 『작별의 손이 내게 말했다』
김영주
윤형돈 시인께서 마지막 시집을 내고 13년 만에 내는 이 시집에 대한 덕담으로 축하를 대신하고자 합니다.
시인은 2003년 학교 재직 당시 응모한 전국교원문학상 시 부문 당선 소감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학교 현장에서 건져 올린 정서와 심상들이 울타리 안에서만 통하는 온실 재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보다 넓게 긍정하며 전 우주를 온 마음으로 껴안으리라.
또한 감히, 시 치료를 통해 상심한 이들과 소외된 사람들의 심령에 보다 가까이 다가서겠다.”
시와 소통하기로 한 시인으로서 마땅한 다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로 그야말로 고통의 궤적을 통과해야 하는 시련의 연속이었음도 고백합니다.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겠지요.
이 시의 표제작 『작별의 손이 내게 말했다』를 읽어보면 그 배경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나서 얻는 쪽 시간을 천혜의 시간으로 알고,
손바닥만 한 종이에 시 몇 구절을 적어 주머니에 넣고 교실을 향해 종종 걸음을 치며
삶의 희열을 느꼈다는 시인의 고백에서 보듯,
시인의 당찬 포부는 다른 건 몰라도 창작 행위로 인해 스스로가 치유되는 기쁨은 터득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치유로 말미암아 문학이 그를 배반하거나 작별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믿음,
삶이란 그냥 있는 그대로 수면 위를 운행한다는 엄숙한 배움을 오늘날까지 믿고 실천해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시인의 이번 시집에서는 주변에 있는 이웃들을 따뜻하게 불러들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나와 내 주변의 모든 것이 바로 시였고, 그분들 덕분에 행복했다는 감사의 메시지가 들어있습니다.
시인의 시 <안부>에서 어머니에게 안부를 묻는 방식으로 ‘콩자반이 또 떨어졌네요.’라고 말합니다.
물리지 않는 어린 날의 향수와 같은 콩자반이겠지만 동시에
이 한 마디가 시인의 정서 밑바닥에 자리한 모든 그리움을 대변하는 행위의 근간이 아니었나 싶어
저는 가슴이 쿵하는 울림을 받았습니다.
‘시’라는 것이 시인의 심상에 깔린 근본 정서를 토대로 쌓아 올리는 것이라고 본다면,
어머니의 콩자반은 시의 쭉정이를 고르고 불을 맞추고 지켜 서서 졸여내는 시인의 마음과
바로 한 마음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장난기 가득하면서도 뒤끝은 무른 아직도 오염이 되려면 한참 먼 시인의
『작별의 손이 내게 말했다』 출판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이 시집으로 인해 좋은 일 많이 생기시기를 바랍니다.
- 2017년 4월 18일 <수원 문학의 집> 출판기념식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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