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주
저 산에 불이 나면 봄이 온다 하였는데
그 어느 고운 손이 산불 놓아 줄 것인지
톡
톡
톡
발만 구르던
지팡이 휘적 나설 건지
초승달
김영주
간이역 따라 오며 건네주던 꽃편지
차창에 매달린 채 따라오던 종이칼*로
연두빛 물먹은 봄밤을
툭
툭
뜯어
읽습니다
*종이칼 - 편지봉투 뜯는 칼
삼오야서의 달
김영주
"시인이 될라카믄 미쳐라, 미쳐야 한다"
"선생님 바람이 차요, 그만 들어 가세요"
"아니다, 내 달 보러 안나왔나"
달처럼 따라 오신다
*삼오야서三IIIII野墅 - 김천시 대항면에 있는 정완영 선생님의 詩室
겨울이야기
김영주
산 첩첩
물도 첩첩
열다섯 평 농막에서
흰머리 맑은물시인 홀로 점심을 드시네
지나온 구십 년보다
하루 해가 더 긴 낮
더듬더듬 오는 봄은 눈 어두워 못 오시나
닦아놓은 고무신만
들었다가
놓았다가
문밖을 나서지 못한
발자국만 소복하다
시인과 사람
김영주
좋은 사람을 만나면 안아주고 싶지만
좋은 시를 쓴 사람은 업어주고 싶다*시던
시인은 가고 없어도 그 말씀은 남았네
안아주고 싶도록 좋은 사람 많은데
업어주고 싶도록 좋은 시 넘치는데
시인은 사람이 그립고
사람은 시인이 그립다
*생전의 백수 선생님 말씀
백수선생님, 가신 지 벌써 세 해가 되었다.
살처럼 빠르다더니 살보다 빠른 세월.
선생님을 뵙고 올 적마다 가슴 한 켠이 아릿해져 아쉬움과 안타까움에 시를 한 편씩 썼다.
거동도 불편하시고 손도 끊긴 적막한 서실에서 봄 오는 소리,
여름 가는 소리 들으시며 창 밖을 내다보시던 선생님.
세상에 대한 그리움이었을까, 지나간 세월에 대한 회한이었을까..
나는 내가 지켜본 선생님의 적막을 짧은 상상력으로 그려 볼 수 밖에.
선생님은 서실에서 바라보이는 황악선을 바라보시며
" 저 산에 불이 나야 봄이 온다" 하셨다.
그 불은 아마도 꽃불이리라. 만산에 홍화
<황악산의 봄>은 문에 기대어 선 지팡이가 바깥 바람 쐴 날만 손꼽아 기다리던 모습에서
"저 산에 불이나면 봄이 온다"는 말씀은 만산을 뒤덮는 꽃불을 말씀하시는 거였으리라.
봄이 와야 꽃이 피는 게 아니라 꽃이 피어 봄이 왔음을 그렇게 말씀하셨다.
선생님의 한 말씀 한 말씀을 다 받아적지 못한 아쉬움 안타까움
그리고 기억력의 한계..
<초승달>은 백수 선생님의 수족이 되어 모시던
영동의 최정란 시인께서 선생님 모시고 외가집 동네를 순례하면서 맞은 무르익은 봄의 정취다.
겨울 끝에 선생님 찾아뵙고 아이들처럼 즐거운 봄나들이를 즐기고
영동역 벤치에 앉아 지는 노을을 등지고 오래오래 손 흔들어 주시던 모습
그 날은 선생님이 꼭 부모님만 같아서 차창 밖의 선생님 모습에 눈이 젖기도 했다.
<삼오야서의 달>은 선생님께서 문밖 길까지 나와 배웅해주시던 삼오야서를 비추던 가을 달빛이 서늘도 해서
<겨울이야기>는 긴긴 겨울 어머니도 생각
그냥 선생님 말씀을 옮겨 적었을 뿐인데 내게는 가슴 아픈 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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