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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함께 / 김영주 - 김영철 시인의 리뷰

꿍이와 엄지검지 2019. 8. 31. 14:25





신과 함께


김영주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머리가 하늘까지 닿을까 말까 닿을까 말까


  혀에 감기는 껌딱지처럼 착착 붙는 신발 없나 굽 낮은 놈 굽 높은 놈 신었다가 벗었다가 예쁘다 싶으면 불편하고

발 편하면 모양새 없고 어떤 놈은 헐떡이고 어떤 놈은 옥죄고 이놈 신고 앞태 보고 저놈 신고 뒤태 보고 그 중 맘에

드는 놈으로 어렵사리 점을 찍네 어디 신발뿐이겠니 모자도 옷도 걸쳤다 벗었다 맞추는 모든 것이 쉬운 일 하나 없는데 그녀는 예뻤다고 예뻐서 반했다고 정 주고 마음 주고 뒤통수를 맞았다는 입심 좋은 어린 종업원 연애담에 씩씩대다 사는 게 다 공부라고 죽을 때까지 공부라고 서리 앉은 이 나이에도 배울 것들 천지라고 늦기 전에 비싼 값 치르고 공부 잘한 거라고 신발가게 종업원을 토닥토닥 달래주니 먼정하니 키만 컸지 솜털 뽀얀 철부지네 신발 두 짝 사면서도

사는 일이 들춰지니 달래 신인가 나를 모시니 신이지 신아 신아 새 신아 발 편해야 몸도 편하다 내 몸 싣고 부디 나를 좋은 곳으로 이끌어줄래

 

  살면서 내게 딱 맞는 신 몇 번이나 만날까



ㅡ『정형시학』(2019,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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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 눈으로 노래를 따라 부르다가

닿을까 말까 ♪♬ 닿을까 말까 ♬ 코미디 프로를 떠올렸다가

입심 좋은 어린 종업원의 신발 가게에 들어선다. 익숙한 풍경이다.

고르다 망설이고 망설이다 집어 들고 신었다 벗었다 거울 보고 돌아보다 마침내 신발 두 짝 사는 일. 

'살면서 내게 딱 맞는 신 몇 번이나 만날까'

절망에 가까운 자조와 좋은 곳으로 향하고 싶은 바람이 함께 길을 나선다.


   요즘은 이리 재고 저리 재서 내 몸에 딱 맞게 맞춰주는 양복점이나 수제화 간판을 만나기가 참 어렵다.

옷이든 신발이든 사람이 기성품에 맞춰 살아야 한다. ㎜나 아라비아 숫자로 정해놓은 수치나 기준도

제각각이어서 표준 체형 밖에 있는, 다시 말해 보편적이지 않은 사람들의 선택과 고충은 그만큼 크다.

마음에 드는데 허리가 맞지 않고 길이는 맞는데 발볼이 너무 끼고 수선을 맡기자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예쁘고 멋지게 보이고 싶은 것은 본능 중의 본능일진대 늘 차선에나 만족해야만 한다.


   발과 몸에 맞지 않아 헐떡이는 소리가 사방에서 요란하다. 白 아니면 黑이요, 내 편 아니면 적이다.

내가 너에게 안성맞춤이 되고 너는 또 나에게 안성맞춤인 그런 세상을 바라는 게 정녕 꿈일까?

바닥을 하늘로 모시고 신을 神으로 모셔야 몸도 마음도 편해질 텐데. (김영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