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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증호 시인의 <화상전화> - <<부산시조>> 2017년 상반기호

꿍이와 엄지검지 2017. 7. 7. 09:12

 

꼼짝마라, 독자!

 

 

손증호 시인의 <화상전화>

 

김영주

 

 

뜨겁다, 그놈의 전화 날것으로 와 닿는

 

축지법이 별거냐며 불쑥불쑥 들이대는

 

그 앞엔 숨을 곳 없다

 

꼼짝 마라, 손 증 호

 

- 손증호, <화상전화>전문, 시집 <<불쑥>>에서

 

 

시시때때로 오는 전화, 얼굴이 보이지 않아도 옷매무새를 고치게 되는 게 본능인데 화상전화라니.

입은 채로, 자다 깨서, 혼밥 · 혼술을 먹다가,

혹은 민망한 장소에서 민망한 자세로 맞닥뜨릴 수도 있는 상황이다.

공개하고 싶지 않은 은밀한 회동이라도 하는 찰나라 치면 이건 뭐 오도 가도 못할 "딱걸렸어".

거기다 화면발이라도 잘 받으면 모르겠는데 액정에 뜬 내 얼굴은 나이보다 훨씬 늙고 추레한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무방비상태의 "내 얼굴"이 확실해서 더욱 당혹스럽다.

 

전화번호 검색을 하다가 내 쪽에서 난데없이 영상통화를 청하기도 한다.

해를 넘기도록 기별한 번 안 하던 이에게 얼굴 보자고 버튼 누른 꼴이 되었으니

의도하지 않은 돌발 상황에 걸어놓고도 식겁을 한다.

허둥지둥 종료 버튼을 찾아 누르기까지의 그 아찔한 순간은 그야말로 영겁이다.

그나마 겨우 끊었다고 가슴을 쓸어내리는데 이거 원 그냥 넘어가면 좋을 걸.

부재중 전화 떴다고 영상통화로 되걸어올 때는 받아야 하나말아야 하나 난감해 하다

에잇! 귀에다 대고 음성통화를 한다. '날것'에게 '날것'을 노출시키는 면구스러운 상황보다는

시치미 뚝 떼는 쪽을 택하는 것이다.

 

숨을 곳이 없다. 과학의 미래를 상상으로 즐길 때는 설렘과 기대로 인해 가슴 두근거리던 시절도 있었는데

막상 현실이 되고 보니 따라가는 데 서툰 느린 보폭으로는 두려움과 당혹감이 더 크다.

나도 모르는 이가 내 카톡에 얼굴을 들이밀기도 하고

내가 남의 전화에 뜨면 누구라고 알려주는 친절한 '어플'도 있다.

좋게 생각하면 세계는 한 지붕 아래고 무장을 해제할 수도 있으니 얼마나 정다울까만

날이면 날마다 맞닥뜨리는 사건, 범죄로 인해 저 요망한 기계 속에는

절대 받아서는 안 될 전화번호도 있을 것이므로 한 공간에 있다고 다 살갑지만은 않은 것이다.

 

이 다양한, 전개 가능한 상황을 시인은 '날것'이라는 싱싱한 단어 한 마디로 무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한다.

구와 구 대구가 선명하고 깔끔하다.

잘 다듬어진, 그러나 무리하게 조이거나 늘이지 않은 말이 꼭 필요한 자리에 놓이니 시가 편안하다.

짧은 꽁트 한 편이 순간적으로 전개된다.

뜨거운 감자를 덥썩 받아 들었다가 삼키지도 뱉지도 못해 안절부절하는 와중에도

시인은 자신의 이름을 만방에 알리는 재치와 여유를 보인다.

'꼼짝마라 손증호'가 독자를 꼼짝 못 하게 만들고 있다.

 

 

-<<부산시조>>  2017년 상반기호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