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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조 대표작들을 읽다 (2) / 신웅순

꿍이와 엄지검지 2016. 6. 13. 08:24

현대시조 대표작들을 읽다 (2)

 

석야 신웅순

 

시조는 3612 소절이다. 그런데 이를 시조라고 말하지 않고 단시조 혹은 단수 시조라고 말한다. 연시조도 있고 장시조도 있기 때문이다. 연시조는 3612 소절인 단시조가 중첩된 것을, 장시조는 3장은 있으되 한 장이 어긋난 것을 말한다. 둘 다 시조 형식에서 벗어난 시조이다. 그런데 우리 선조들은 조선시대에 장시조를 시조로 수용했고 근대에 와서는 연시조도 시조로 수용했다. 외연은 넓어졌으나 시조의 정체성 면에서는 그만큼 멀어졌다.

작년 한국문인협회 시조분과에서 엮은 현대시조 대표작 472편을 출간했다. 시조의 정수, 단시조로만으로 출간했다. 당연히 여겨져야할 일인데도 이를 축하하고 기뻐해야한다는 것이 왠지 씁쓸하기만 했다.

대표작을 읽는 동안 모처럼 단시조의 맛을 느낄 수 있어 행복했다.

 

달빛은 깨지고

기다림은 헤지고

 

깊은 강물 되어

얼굴을 붉힙니다

 

한송이

붉은 꽃이 되어

당신은 되돌아섭니다.

- 김영남의 고요

 

달빛이 깨지다니 기다림이 헤지다니. 시각을 청각화, 추상을 구상화시켜 고요를 감각적으로 표현했다. 달빛 내리는 새벽이었으리. 기다려도 님은 오지 않고 화자는 날까지 샌 모양이다. 강물이 되어 가고 싶으나 강은 갈수록 넓어지고 깊어진다. 그래서 갈 수가 없다. 깊은 강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깊이 사색하는 것이다. 해가 뜰 무렵 시인은 그만 얼굴을 붉히고 만다. 오지 않는 님을 기다리지나 말 것을. 시인은 보았다. 그 사람은 한송이 붉은 꽃이 되어 돌아왔다. 그러나 그만 되돌아서고 말았다. 안타깝게도 님의 모습은 환상으로 끝났다.

유효도 없고 반 판도 없다. 시조는 종장에서 멋지게 메쳐 이렇게 한 판 승부로 끝나야 한다. 황진이의 절구 어저 내일이여 그릴 줄을 모르는가를 연상시킨다. 시조의 참맛은 이런 것이다. 여창 지름시조쯤으로 부르면 더욱 감칠맛이 날 것 같다.

김영남은 2014년 창조문학에 등단했다.

 

해만 설핏 넘어가면

 

수상하다, 수상해

 

분살 뽀얀 저 가시내

밤 이슬 밟더니만

 

저 혼자

배불렀다가

저 혼자

몸을 푼다

- 김영주의 달의 기울기

 

부모가 말렸나 보다. 해만 넘어가면 그 여자는 어디로 갔는지 수상하다. 옛날에는 밤이슬이 내려야만 연애를 할 수 있었다. 동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연애라는 것은 둘이 있기만 해도 금세 소문이 난다. 그러면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는 만날 수 없다. 가택연금이라는 아버지의 무서운 형벌이 내려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달밤에 왕솔나무 밑에서 몰래 만나 사랑을 나누었다. 아무도 모르니 저 혼자 배부를 수 밖에 없고 소문 때문에 저 혼자 몸을 풀 수 밖에 없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녀 간의 정분은 말릴 재간이 없다.

실감이 날 정도로 6,70년 대의 로맨스를 기막히게 표현했다. 어떻게 12개의 돌로 이런 장편소설을 풀어낼 수 있을까. 시조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어디서 어떻게 만나고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생략되어 있다. 상황만 제시되어 있을 뿐이다. 나머지는 상상만 하면 된다. 얼마나 흥미진진한가. 12개의 돌로 사개를 맞추는 재미도 쏠쏠하다. 쉽지는 않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요리조리 맞추어 가다보면 사개가 맞게 되어 있다. 이리 맞추고 저리 맞추는 언어의 퍼즐 게임이다. 이것이 시조이다.

시인은 2009년 유심으로 등단했다. 시조집 미안하다, 이 있다.

 

산새소리

하도 고와

모자 속에 담아오다

 

개울물

건너뛰다

다 쏟고 말았구나

 

두어라

내년 이맘 때

목련으로 필 것이니

- 박상주의 순수

 

봄이다. 야트막한 산에 올랐나 보다. 봄의 산새소리는 얼마나 맑고 깨끗한가. 겨울 내내 듣지 못했던 곱디고운 산새의 울음이다. 시인은 그냥 흘려보낼 수 없어 모자 속에 새소리를 담았다. 산을 내려와 개울물을 건너뛰다 그만 물에 빠지고 말았다. 담아온 산새소리가 우르르 쏟아졌다.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 짐작이 간다. 속상해도 이런 산새 소리야 어디를 가겠는가. 어디에 있던 그 아름다운 산새소리는 내년 이맘 때쯤 목련으로 필 것이 아니냐. 절묘하게 청각이 시각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산새 소리와 목련꽃이 시인에 의해 또 하나의 세계를 창조해냈다. 절묘한 뒤집기이다.

세상을 살아가려면 이런 정도의 여유와 풍류는 있어야한다. 시인은 산새처럼 아름답고 햇살처럼 고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종장에서 시조의 반전은 이 정도는 되어야 시조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매력있는 시인과 봄날 차 한 잔 나누고 싶은 것은 필자뿐일까.

2012년 불교 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조집 막사발을 구우며등이 있다.

 

밤 하늘의 별빛이 저리 아름다운 건

멀리 있기 때문이라고 누군가가 말했지요

 

얼마나 더 아름다우려고

당신, 그리 먼가요

- 서숙희의 「멀어서 아름다운

 

 

석야 신웅순의 서숙희의 멀어서 아름다운

 

쉽다. 쉽다고 깊은 맛이 없는 것이 아니다. 별빛이 저리 아름다운 것은 멀리 있기 때문이라고 누군가가 말했다고 한다. 어떤 사물이고 멀리 있어야 아름답다. 사람도 멀리 있어야 아름다운 법이다. 김광균은 설야를 멀리서 여인의 옷 벗는 소리라고 하지 않았는가. 여인이 가까운데에서 옷을 벗는다면 누가 아름답다고 생각하겠는가.

종장에서 기막힌 반전이 일어났다. ‘얼마나 더 아름다우려고 당신, 그리 먼가요라고. 사실은 당신은 더 멀리에 있다. 아름다우려고 멀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은 이미 떠나간 님이거나 멀어진 님 아니면 이별한 님이다. 역설로 반전을 시켰다. 문장 자체에는 모순이 없으나 속 뜻은 전혀 반대이다. ‘멀어서 아름다운 님이 아니라 멀어서 멀어진 님이다.

말이 막혀버리는 , 바로 이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것이 시조이다. 어쩌면 우리의 마음을 이리 잘도 알기 쉽게 표현했을까. 언어의 마술사는 이를 두고 한 말이리라. 곱씹어도 곱씹어도 자꾸만 읽고 싶은 시조이다.

서숙희 시인은 1992년 매일신문,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손이 작은 그 여자등이 있다.

 

소리를 짊어지고

 

누가 영을 넘는가

 

이쯤해 혼을 축일

 

주막집도 있을 법한데

 

목이 쉰

 

눈보라 소리에

 

산 같은 한을 옮긴다.

- 이상범의 남도창

 

오래 전에 필자는 이 텍스트로 욕망 분석이란 논문 한편을 쓴 적이 있다. 위대한 소설 한편, 거대한 영화 한 편이다. 그만큼 필자에게 울림을 주었던 시조였다.

영을 넘으려면 소리를 짊어지고 가야하다. 영을 넘어야 득음의 경지에 다달을 수 있다. 이쯤에 혼을 축일 주막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없다. 득음의 경지로 가는 길은 이렇게도 멀다.

목이 쉰 눈보라 소리는 그야말로 쾌도난마이다. 여기가 클라이맥스이다. 득음하지 못한 한을 눈보라 소리로 치환시켰다. 그래야 산 같은 한을 옮길 수 있고 그래야 득음의 경지에 다달을 수 있다. 45내외의 글자로 이런 표현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시인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녹원 이상범은 196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시조집 신전의 가을22권이 있다. 중앙시조대상, 이호우 문학상, 가람시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이상범의 남도창을 여창 가곡 이수대엽쯤으로 불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런 시조를 볼 때마다 왜 시조가 창을 놓쳤는지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현대시조도 우리의 전통 가곡으로 자연스럽게 부르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어디 가곡만이 그런가. 시조창도 예외는 아니다.

음악성이 없는 시조는 시조의 맛을 느낄 수 없다. 음악성은 ‘3434’ 와 같은 기계적 음수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고시조 중장에는 이런 음수에 들어 맞는 것들이 흔치가 않다. 한자어 때문이다. 이조년의 시조 다정가 중장의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같은 것들이다. 따지고 보면 이 중장은 3소절이다. 이를 일지/춘심을/자규야/알랴마는으로 읽어야 자연스럽고 형식에도 맞다. 한자어를 두 소절로 나누어 읽는 방법이다. 어떻게 읽고 어떻게 노래해야 시조의 음악성을 구현할 수 있을까 고구해볼 필요가 있다. 단순히 산술적으로 글자 수만을 잘라내서는 시조의 음악성을 제대로 살려낼 수 없다.

엊그제만해도 미세먼지가 하늘을 덮더니 오늘은 봄햇살이 하늘을 덮었다. 바람이 미세먼지를 밀어낸 것이 아니라 오늘은 햇살이 밀어낸 것 같다.

하루하루가 연둣빛에서 초록빛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연둣빛이 아름답듯 물들지 않은 새내기 시인들의 시조들이 순수하고 참신한 것들이 많다. 새소리가 짙어지고 초록빛도 짙어지면 새내기들의 깊은 시조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시조를 읽는 맛과 시조를 짓는 맛 둘 다 필자에게는 행복한 즐거움이다. 시인들에게 고마움과 외경의 마음을 표한다.

 

- 시조문학,2016 여름호,86-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