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단시조 - 내가 읽은 나의 단시조 <초승달>
단시조, 짧아서 더 큰 충격 / 김영주
간이역 따라 오며 건네주던 꽃편지
차창에 매달린 채 따라오던 종이칼*로
연두빛 물먹은 봄밤을
툭
툭
뜯어
읽습니다
*종이칼 - 편지봉투 뜯는 칼
- <초승달> 전문
조병화 시인은 여러 문학 장르 가운데 시를 선택한 이유로 시의 경제성을 들었다.
산문이 축적의 원리를 따른다면 시는 압축의 원리를 따른다.
곧 시는 순간의 장르라는 말이며 순간의 장르라는 것은 시가 짧아야 한다는 말이 된다.
세상은 바삐 돌아가고 시집 읽을 시간은 없는데 하물며 시는 길어서
독자에게 인내심을 요구하거나 게다가 난해해서 암호를 푸는 것처럼 시가 어렵기 까지 하다면
시는 당연히 독자에게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젊은 시인들은 짧은 글귀로 공감을 자아내는 '손바닥 시'라는 이름으로
SNS 시대의 시를 주도하며 새로운 트렌드를 형성해 가고 있다.
시조는 시조 자체만으로도 정형시가 갖는 절제와 압축의 미가 있어
두 수, 세 수 짜리 연시조라 해도 길어야 여섯 줄, 아홉 줄 시에 비유할 수 있으니
결코 길다고는 할 수 없다.
또한 하이쿠나 쏘네트 등의 형식이 엄격한 외국의 정형시에 비해 우리의 시조는
그 정형을 음수율보다는 음보율에 두고 있어 형식면에서도 융통성을 보이는데,
이 좋은 형식을 가지고도 연작이 반복되면 같은 리듬의 반복으로 인해 얻어지는
단조로움이나 지루함을 음독(音讀)시 피하기가 어렵다.
시는 압축이고 응축이고 긴축이다. 시조는 더욱 그러하며 단시조는 더더욱 그러하다.
시조 고유의 풍미와 촌철살인의 묘미를 살릴 수 있는 수단으로
단시조가 적격이라고 하는 것도 단시조가 연작의 시조를 쓸 때보다는
시적 긴장을 팽팽하게 유지할 수 있고 초, 중장이라는 징검다리를 건너오는 동안
이미지나 메시지가 증폭되어 종장이 안겨다 줄 감동의 폭발력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과수원의 복숭아나무가 약 오른 꽃망울을 물고,
연둣빛 물오르는 소리 도란도란 들려오던 조금은 쌀쌀한 이른 봄,
아흔을 훌쩍 넘긴 백발의 노 시인과 시인을 곁에서 모시는 영동의 제자는
수원 손님을 보내기 위해 시골역 플랫폼에서 완행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노시인을 모시고 시인의 외가가 있던 황간의 오도티 마을을 다녀오는 길이다.
조금은 노곤하지만 아이처럼 즐거운 봄나들이였다.
매번, 마지막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선생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엔
알 수 없는 서러움이 꼭 따라왔다.
그때만 해도 행보가 수월하셔서 달처럼 따라오시며 손을 흔들어주셨던
“삼오야서(三lllll野書)*의 달” 백수 선생님.
차창에 매달린 채 오래오래 따라오는 쓸쓸한 달을 보며,
이 눈물 젖은 은사(恩事)를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누릴 수 있을까…, 생각하며
먼 훗날 오래 된 책갈피 속에서 빛바랜 채 툭, 떨어질 봄날의 삽화 한 컷은 그렇게 그려졌다.
* 김천시 대항면에 소재한 백수 선생님 생전의 서실(書室)
<한국동서문학> 2017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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