黃靑洞*
박기섭
참 그날 그 아득한 날 숱하게 꺾어 왔던 산길 들길 고샅길들 다 거기
두고 왔네 그 무논 쪼대흙 속에 연밥인 양 묻고 왔네
꼭 하나 그러지 못하고 가슴속에 꾸려 온 것, 흙이라도 묻을까 봐 앞
섶으로 닦아 온 것, 갓 빗은 머리카락 냄새 살냄새 나는 이름 하나
차라리 열두어 번 그 전생의 일이었다면 애먼 눈썹 위에 무겁게 얹
고나 갔을 먹기와 먹이끼 같은 것, 안마르는 눈물 같은 것
이마에 墨을 넣고도 그런 줄을 몰랐구나 그런 줄을 모르고는 오십
년을 살았구나 황청동, 지상에 없는 저녁 길 끝 황청동
* 대구시 수성구 황금동의 옛 이름. 보래는 푸른 산이 에워싸고 들녘의 곡식이 황금물결을
이룬다하여 '黃靑'이라 했으나, 황천길의 '黃泉'과 어감이 비슷해 '黃金'으로 바꾸었다. 도시
외곽의 한촌이었던 그곳에서 여덟 살부터 열한 살까지 살았다. 그 무렵에 만난, 잊을 수 없
는 한 아이에 대한 이야기다.
제2회 백수문학상 수상작
<<좋은시조>> 2016 겨울호에 재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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