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신
1.
그때는 말 못 했네 시집살이 어린 새댁
마음 닦듯 시어머니 고무신 희게 닦아
댓돌에 올려놓으면 하얀 분꽃이 피어났네
2.
친정 진열장에 모셔놓은 조카 꽃고무신
걸음마 한 발짝에 손뼉 웃음 풍선이 날고
그 풍경 흑백사진이 밑줄 친 생을 당기네
3.
서슬 퍼렇던 시절도 아프면서 바래지고
젖살 뽀얀 조카도 흐르는 시간의 여울
어머니 흰 고무신만 섬이 되어 멈춰 섰네
돌아보면 다 꽃입니다
떠나는 이 앞에선 그저 죄만 같습니다
시간은 눈물 겯고 계절은 절룩거리며
여윈 채 새로 눈 뜸이 아픔일줄 몰랐습니다
산다는 건 난만히 꽃 진 자리 끌어안는 일
그리움 정점에서 맑은 멧새 울음 찍는 일
사무쳐 가슴 도려낼 줄 정녕코 몰랐습니다
산기슭 거북바위에 곤줄박이 쫑긋댈 때
고향 우물 두레박에 싸리울 시래기에
서설은 아무일 없듯 가만가만 쌓입니다
보낼 사람 보내야 새롭게 허울을 벗는
매운 한파 녹이듯 절명시 활활 타올라
여기는 잠시 소풍 온 곳, 돌아보면 다 꽃입니다
다시 길이 되는
떠나가는 뒷모습 하염없이 비 내린다
꽃 진 자리처럼 서러운 건 보내고]
낮은 데 적요의 마음 어려오는 눈부처
저무는 먼 산 이마위에 아프게 돋는 별
맑은 눈빛 차마 말 못할 슬픔 한 모금
그 하늘 그대로있고 생이 다시 길이 되는
<<돌아보면 다 꽃입니다>> 진순분, 2018 고요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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