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시집

진순분 시인의 시집 <<돌아보면 다 꽃입니다>>

꿍이와 엄지검지 2019. 7. 23. 21:38




고무신


1.

그때는 말 못 했네 시집살이 어린 새댁

마음 닦듯 시어머니 고무신 희게 닦아

댓돌에 올려놓으면 하얀 분꽃이 피어났네


2.

친정 진열장에 모셔놓은 조카 꽃고무신

걸음마 한 발짝에 손뼉 웃음 풍선이 날고

그 풍경 흑백사진이 밑줄 친 생을 당기네


3.

서슬 퍼렇던 시절도 아프면서 바래지고

젖살 뽀얀 조카도 흐르는 시간의 여울

어머니 흰 고무신만 섬이 되어 멈춰 섰네



돌아보면 다 꽃입니다


떠나는 이 앞에선 그저 죄만 같습니다

시간은 눈물 겯고 계절은 절룩거리며

여윈 채 새로 눈 뜸이 아픔일줄 몰랐습니다


산다는 건 난만히 꽃 진 자리 끌어안는 일

그리움 정점에서 맑은 멧새 울음 찍는 일

사무쳐 가슴 도려낼 줄 정녕코 몰랐습니다


산기슭 거북바위에 곤줄박이 쫑긋댈 때

고향 우물 두레박에 싸리울 시래기에

서설은 아무일 없듯 가만가만 쌓입니다


보낼 사람 보내야 새롭게 허울을 벗는

매운 한파 녹이듯 절명시 활활 타올라

여기는 잠시 소풍 온 곳, 돌아보면 다 꽃입니다


다시 길이 되는


떠나가는 뒷모습 하염없이 비 내린다

꽃 진 자리처럼 서러운 건 보내고]

낮은 데 적요의 마음 어려오는 눈부처


저무는 먼 산 이마위에 아프게 돋는 별

맑은 눈빛 차마 말 못할 슬픔 한 모금

그 하늘 그대로있고 생이 다시 길이 되는



     <<돌아보면 다 꽃입니다>> 진순분, 2018 고요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