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시집

임성구 시인의 시집 <<혈색이 돌아왔다>>

꿍이와 엄지검지 2019. 7. 23. 20:54





거울


문득 아들의 방문을 열어보았다

구수한 은빛 냄새가 일순간 건너왔다

모른 척 받아 먹어보는

이삼십 년 전 고뇌의 맛


김승진은 스잔을 무척 사랑했고

박혜성을 경아를 무척이나 사랑했다

내 못난 짝사랑의 결말은

연기처럼 매웠다


몽글몽글한 구름들은 그날처럼 고뇌 중이다

무슨 말 건넬까를 망설이는 부재중 말과

스무 살 이해한다는 속말이

문을 그냥 닫게 했다



          봄꽃 청탁


1.

겨울 초입 봄에게 원고청탁 받았습니다

눈밭에서 꽃 피우는 내내, 방글방글 하겠습니다

어쩌면 인위적으로 키워내는 봄이래도


2.

당신 먼저 내게 와서 향기 가득 건네주시니

얼음 같은 마음 열고 공손하게 받습니다


이 천금(千金),

청탁금지법에도

안 걸립니다

Enter



     혈색이 돌아왔다


얼음장 밑 사혈의 밤이 무척이나 길어지더니

열 손가락 마디마디 한 열흘을 찌르고서야

꽃피기 시작한 화단

죽다 다시 살아난 봄


사자(使者)를 돌려보낸다, 나약한 밤에 찾아오신

짧은 빛이 드리운 화란(禍亂)에도 희망은 있어

하하하, 나는 웃는다

그냥 보낼 수 없는 봄


잠시 잠깐 다녀가는 초롱꽃 등을 달고

가볍게 몸을 털고 영혼을 털어내며

독작의 광기를 키운다

오늘밤은 래퍼들처럼



<<혈색이 돌아왔다>>  임성구, 2019  시인동네 시인선 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