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시집

김정숙 시인의 시집 <<나뭇잎 비문>>

꿍이와 엄지검지 2020. 2. 25. 17:46







설마 했는데


기을에 섬겨야 할 건

물드는 저 마음이다


붉은빛 노란빛

망설이는

감잎의 살갗


숨겨온 나의 과거가

찍혀 있을

줄이야!




나뭇잎 비문


김정숙


살아내기 위하여 바둥바둥하던 이

이슬 머금은 채로 흔들리다 반짝이다

낱낱이 백골 드러낸 나뭇잎을 보았다


떨어져서 수백 번 마르고 또 젖으며

잎맥과 잎맥 사이 관계 탈탈 털어도

살아서 내세울 것이 딱히 없는 갈음을


산다는 건 몸속으로 길을 내는 거란다

가로세로 막 얽힌 우여곡절의 저 사설

흙 위에 살포시 누운 빈칸들을 읽는다




밥이 되는 시


김정숙


자음 따로 모음 따로


뒹굴어도 삶이다


온몸에 흙물 적셔


시 쓰는 지렁이


콕 집어


참새가 물고


저녁상을 차린다


<<나뭇잎 비문>>  2019 책만드는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