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
씨벌헐, 맞짱 한번 떠보자고
웃통 벗어던지고 달려드는 결기
비바람 몰려오는 저녁
처마 끝에서
밭둑 대추나무 우듬지
까무룩 낭떠러지까지
보이지 않는 생명줄 의지한 채
서슴없이 공중 사다리를 타는 가장
어린 딸 보기에
천하무적 마징가 가장
책
용맹정진이란 저런 것이다 돌아앉은 면벽수행 수년째
조개처럼 꽉 다문 묵언의 뒤통수들
나이들어 노안 오고 비로소 미안해진다
의자어머니
엉덩이 받치는 쿠션까지 떨어져
청테이프로 기워 쓰던 식탁의자
폐기물수거업체에전화를 하고
아파트 입구에 내려놓았다
서민 아파트 이사올 때 함께온
십년 훌쩍 넘은 식탁의자
내려놓은 지 며칠 지나도록
수거업체 직원이 바쁜 것인지
잊어버린 것인지
퇴근할 때마다 앉아 있다, 여전히
청테이프 너덜너덜 붙어 있고
누런 솜까지 삐져나와서
저 의자에 앉아 허기 메우고
끼니를 이었다기보다
내 남루를 까발리는 것 같아서
부끄럽고 성질이 났다
다시 전화를 해야할까
전화에 대고 신경질을 부려볼까
핸드폰을 들었다 놨다 벼르던
어느 저녁 일곱시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의자는 간곳없고
늙은 어머니 대문 밖까지 마중 나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윤선도 연시조 <어부사시사> 후렴구 인용
<<난장>. 차승호, 2019 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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