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시집

차승호 시인의 시집 <<난장>>

꿍이와 엄지검지 2019. 7. 23. 22:49




거미



씨벌헐, 맞짱 한번 떠보자고


웃통 벗어던지고 달려드는 결기


비바람 몰려오는 저녁


처마 끝에서


밭둑 대추나무 우듬지


까무룩 낭떠러지까지


보이지 않는 생명줄 의지한 채


서슴없이 공중 사다리를 타는 가장


어린 딸 보기에


천하무적 마징가 가장




용맹정진이란 저런 것이다 돌아앉은 면벽수행 수년째

조개처럼 꽉 다문 묵언의 뒤통수들

나이들어 노안 오고 비로소 미안해진다



의자어머니


엉덩이 받치는 쿠션까지 떨어져

청테이프로 기워 쓰던 식탁의자

폐기물수거업체에전화를 하고

아파트 입구에 내려놓았다

서민 아파트 이사올 때 함께온

십년 훌쩍 넘은 식탁의자

내려놓은 지 며칠 지나도록

수거업체 직원이 바쁜 것인지

잊어버린 것인지

퇴근할 때마다 앉아 있다, 여전히

청테이프 너덜너덜 붙어 있고

누런 솜까지 삐져나와서

저 의자에 앉아 허기 메우고

끼니를 이었다기보다

내 남루를 까발리는 것 같아서

부끄럽고 성질이 났다

다시 전화를 해야할까

전화에 대고 신경질을 부려볼까

핸드폰을 들었다 놨다 벼르던

어느 저녁 일곱시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의자는 간곳없고

늙은 어머니 대문 밖까지 마중 나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윤선도 연시조 <어부사시사> 후렴구 인용



<<난장>.  차승호, 2019  애지